[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팔색조 냉면 이야기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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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11   |  발행일 2018-05-11 제41면   |  수정 2018-05-11
南과 北 ‘냉면 열전’
속초 단천면옥 냉면
北 평양냉면- 메밀 100%·동치미국물
南 진주냉면- 해물육수·고명에 육전
北에는 없는 함흥냉면, 南서 음식 대비
부산안면옥 물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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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서구 도원동 참한우숯불갈비의 물냉면. 열무김치가 고명으로 올라가고 식감이 부드러워 대구식 냉면과 평양식 냉면의 절충스타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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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단천면옥 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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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밀과 전분을 8대 2 비율로 혼합한 소바를 내는 중구 삼덕동 ‘니하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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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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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안면옥 물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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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막국수

2018년 냉면시즌이 개막됐다. 그동안 이런저런 냉면스토리를 많이 언급했다. 할 얘기를 다 한 것 같은데 매년 이맘때가 되면 또다른 냉면 이야기를 하고 싶다. 파고들면 들수록 나도 모르는 냉면이야기가 줄을 잇는다. 국내의 면 요리는 조선조까지는 메밀가루로 만든 국수가 주종을 이루었는데 그 중 대표격이 바로 ‘냉면’이다. 여러번 강조했지만 냉면은 북한만의 음식은 아니다. 남한에도 만만찮은 냉면문화가 있다. ‘북 평양, 남 진주’란 말이 있다. 북한에는 평양냉면, 남한은 진주냉면이란 말이다. 북한의 양대 냉면을 평양과 함흥냉면으로 대비시킨 건 누굴까. 북한이 아니라 남한의 냉면음식이었다. 북한조리사전에도 함흥냉면이란 항목이 없다. 평양냉면은 물냉면의 대표주자이지만 북한에선 함흥냉면이 아예 없다. 비엔나에 비엔나커피가 없는 것과 같다. 함흥에선 비빔냉면을 ‘농마면’ 혹은 ‘회국수’로 부른다. 농마는 ‘녹말’의 함경도 사투리다. 다시말해 농마면은 메밀가루로 만드는 게 아니라 당면처럼 전분으로 만든다. 고명으로는 가자미식해와 명태식해 등을 사용했다. 속초아바이냉면마을 ‘단천식당’에 가면 토박이들이 함경도에 살 때 해 먹던 그 회국수의 기운을 맛볼 수 있다.

北 평양냉면- 메밀 100%·동치미국물
南 진주냉면- 해물육수·고명에 육전
北에는 없는 함흥냉면, 南서 음식 대비

서울·인천, 평양 출신 실향민 가게 성업
대구, 강산·대동·부산안면옥·대동강
질긴 냉면 메카…가위로 잘라 먹어야

강원, 봉평 등 지역별 네가지 막국수
부산, 이북 실향민 내려와 밀면 정착


◆팔도 별별 냉면기

팔도 냉면인문학에 일가견 있는 음식평론가 박정배씨. 그가 기자에게 냉면 정보를 가득 보내왔다. 지역 냉면 마니아를 위해 개괄적으로 정리해 봤다. 1911년 이미 ‘평양조선인면옥조합’이 생길 정도로 냉면은 평양의 대중적인 외식이었다. 함경도 사람들은 강원도 속초권만 아니라 중부시장과 청계천 오장동 부근에 자리 잡았다. 53년에 ‘오장동함흥냉면’이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하면서 서울에서 함흥냉면의 질긴 역사가 시작된다. 전성기 때는 오장동에만 20여 개의 함흥냉면집이 있었다.

인천에는 6·25전쟁 이전에도 냉면이 성행했다. 36년에는 인천의 ‘냉면배달조합’에 관한 기사가 신문에 나올 정도로 냉면은 상당히 보편적인 외식이었다. 52년부터 미군 기지가 주둔하면서 의정부·동두천 일대에는 실향민들이 많이 정착하게 된다. 평양 출신 실향민이 53년 창업한 동두천 ‘평남면옥’은 평양 장터의 냉면을 파는 집으로 알려져 있다. 얼음이 가득한 육수는 서울 마포의 ‘을밀대’와 닮았다. ‘의정부평양면옥’은 1·4 후퇴 때 평양에서 피란온 홍진권씨가 70년 경기도 전곡에서 냉면집을 창업했다가 87년 의정부로 옮겨 지금까지 영업하고 있다. 서울의 ‘필동면옥’과 ‘을지면옥’은 홍씨의 딸들이 운영하는 집이다.

51년에 피란민 수용소와 미군 기지가 평택에 들어섰다. 평남 강서에서 냉면가게를 운영하던 실향민이 53년 ‘강서면옥’을 시작한다. 강서면옥은 58년 서울로 이전한다. 30년대 평안북도 강계에서 ‘중앙면옥’을 운영하던 고학성씨의 아들이 74년 ‘고박사냉면’을 개업한다.

◆물냉면 & 비빔냉면

물냉면과 비빔냉면은 같은 면이 아니다. 물냉면은 메밀가루, 비빔냉면은 전분을 사용해 만든다. 그런데 남한에선 물과 비빔냉면의 면이 같다. 그 면에 육수가 들어가면 물냉면, 고추장으로 비벼내면 비빔냉면이 된다. 원전에서 많이 멀어진 버전이랄 수밖에. 하지만 식문화에 정답은 없다. 가가례이고 자기식대로 먹는 법이 있는 것이다. 그걸 오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전분도 북한에서는 감자전분, 남한은 고구마전분을 애용한다. 물론 비싼 건 감자전분. 강원도 전통음식인 옹심이칼국수는 감자전분 앙금을 팥죽용 새알심처럼 굳혀 요리한 것이다.

냉면은 여름에만 먹는 줄로 아는데 그건 아니다. 실제 북한에선 대한·소한 때 추워 덜덜 떨면서 먹는 걸 원칙으로 한다. 북한식 냉면은 ‘이냉치냉(以冷治冷)’식이다. 평양냉면 육수는 동치미국물을 사용해야 된다. 일부 안동 건진국수처럼 꿩육수를 사용하지만 정통은 아니다. 평양냉면은 유독 메밀가루를 많이 사용한다. 남한의 메밀보다 북한의 메밀은 상대적으로 찰기가 풍부하다. 그래서 뭉쳐놓아도 툭툭 잘 끊어지질 않는다. 100% 메밀가루로 만든 냉면이 그래서 가능하다. 하지만 남한의 메밀은 점찰력이 부족해 국수로 만들면 너무 잘 끊어져 먹기 곤란하다. 차리리 묵으로 사용하는 게 더 낫다.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선 메밀가루에 전분을 적당량 섞어야 된다. 춘천막국수영농조합법인에서는 메밀가루 70%에 고구마전분 30%를 혼합해 사용한다.

진주냉면은 육수를 사골육수 대신 멸치 등 해물육수를 사용한다. 또한 고명으로 육전을 올려주는 게 특징이다.

◆강원도에선 막국수

북한에선 냉면이라고 하지만 강원도에선 ‘막국수’로 부른다. 강원도 막국수도 네 형제가 있다. 첫째는 ‘춘천막국수’, 둘째는 ‘봉평막국수’, 셋째는 ‘원주막국수’, 넷째는 ‘양양막국수’. 물론 첫째가 가장 돈을 많이 번다. 차이점은 뭘까. 일단 면은 비슷하다. 대다수 메밀가루에 일정량의 전분을 섞어 사용한다. 비율도 7대 3 정도. 그런데 육수는 제각각이다. 춘천막국수는 사골육수, 봉평막국수는 맑은 과일·채소육수를 사용한다. 원주막국수는 다른 곳과 달리 통메밀가루를 사용한다. 그래서 색깔이 더 거무튀튀하다.

양양막국수는 토박이들로부터 ‘동치미국수’로 불린다. 양양시에선 춘천막국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동치미국수라 명명했다. 동치미국물에 사골육수를 섞어 사용하는데 평양냉면의 원형에 가장 가깝다고 보면 된다.

북한의 냉면은 부산으로 내려와 ‘밀면’이 된다. 밀면은 ‘밀가루냉면’의 준말이다. 부산으로 내려와 우암동에 정착하면서 이북 실향민이 만들기 시작한 퓨전냉면이라고 보면 된다. 메밀가루가 너무 귀해서 상대적으로 풍부한 식재료였던 밀가루에 전분을 섞어 만든 것이다. 이 밀면은 여느 냉면에 비해 색깔이 옅다. 언뜻 ‘잔치국수’ 같다. 실제 부산은 국내 최고의 잔치국수 고장이다. 일제강점기 통영~거제에서 잡힌 남해안 멸치는 건조돼 잔치국수 국물용 식재료로 잘 팔려나갔다. 잔치국수는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제면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부산에선 고추장을 넣어 비빔국수 스타일로도 즐기는데 이게 훗날 비빔당면으로 발전하게 된다. 지금도 광복동의 ‘할매비빔국수’가 그 전통을 이어받았다.

◆대구의 냉면문화

대구의 냉면문화를 만든 4인방은 ‘강산면옥·대동면옥·부산안면옥·대동강’이다.

4인방 이외 뜨거운 메밀칼국수, 메밀묵채 등을 잘 하는 곳은 앞산순환도로변에 있는 ‘풍성손메밀’과 대구수목원 근처에 있는 ‘풍성메밀’. 그리고 망개떡으로 유명한 경남 의령의 대표적 퓨전냉면인 ‘의령메밀소바’도 몇년전 대구로 진입했다.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 두 버전이 있다.

냉면과 지척에 있는 소바. 사실 이걸 제대로 맛보려면 중구 삼덕동 ‘니하치’로 가면 될 것 같다. 니하치는 ‘메밀과 전분 혼합비율이 8대 2인 소바’를 의미한다. 메밀 100%면 ‘주와리’, 10대 1이면 ‘소토이치’, 9대 1은 ‘이큐’, 8대 2면 ‘니하치’, 5대 5는 ‘도와리’로 불린다. 일본 시중에 판매되는 소바는 메밀가루가 30% 이상 들어가야 소바로 인정을 받을 수 있고, 포장시 겉면에 메밀가루의 함량을 반드시 기재하도록 한 농림성 규정이 있다. 소바를 사랑하는 일본에서는 와인의 소믈리에격인 ‘소바리에’라는 직업도 있다. 이 집에 가면 소바 삶은 물인 ‘소바유’를 준다. 나중에 일본간장 쯔유를 넣어 먹으면 새로운 식감을 만날 수 있다.

언젠가부터 냉면은 질긴 것, 막국수는 잘 끊어지는 것으로 통한다. 특히 대구는 ‘질긴 냉면의 메카’다. 너무 질겨 가위로 잘라야 제대로 먹을 수 있다.

질긴 게 싫은 이는 막국수쪽으로 건너간다. 2년전 대구에도 강원도식 묵처럼 잘 끊기는 막국수 전문점 하나가 진출했다. 수성구 지산동 95-5 ‘삼교리동치미막국수’이다.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스타일의 막국수인데 사골육수 대신 동치미국물을 육수로 낸다. 일반 막국수와 회막국수를 다 먹어보길 권한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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