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曲기행 .18] 안동 하회구곡...하회마을 휘도는 낙동강…당쟁의 소용돌이 피해 산림처사가 은거하다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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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19 07:59  |  수정 2021-07-06 14:51  |  발행일 2018-04-19 제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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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구곡 1곡인 병산 풍경. 서애 류성룡을 기리는 서원인 병산서원 강당 마루에서 바라본 만대루와 낙동강, 병산의 모습이다.

하회구곡(河回九曲)은 남옹(楠翁) 류건춘(1739~1807)이 안동 하회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낙동강에 설정한 구곡이다. 류건춘은 겸암(謙菴) 류운룡(1539~1601)의 후손으로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벼슬을 하지 않고 산림처사로 살았으며, 문집 ‘남옹유고(楠翁遺稿)’가 있다.

겸암 류운룡의 후손 남옹 류건춘
세거지 하회 중심으로 구곡 설정
문집 ‘남옹유고’에 구곡시 남겨

朱子의 무이도가 차운하는 대신
자신이 직접 정한 운으로 詩 지어
서시를 먼저 내는 형식도 탈피해


201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이름을 올린 하회마을은 풍산류씨가 600여년간 대대로 살아온 대표적 전통마을이다. 류씨가 하회에 자리잡은 지 얼마 안 돼 입암(立巖) 류중영(1515~1573)이 과거 급제 후 벼슬이 관찰사에 이르렀고, 두 아들 겸암 류운룡과 서애(西厓) 류성룡(1542∼1607)을 두었다. 모두 퇴계 이황의 제자로 영남학파의 거봉이 되었다. 류성룡은 영의정까지 지냈다.

하회마을에는 풍산류씨 대종택인 입암고택(양진당)과 서애종택인 충효당 등 보물로 지정된 고택을 비롯해 문화재가 즐비하다. 하회구곡은 류운룡과 류성룡의 유적이 중심이 되고 있다.

류건춘이 하회구곡을 언제 설정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그가 지은 ‘하회구곡시’가 ‘남옹유고’에 실려 전하고 있어 하회구곡을 설정해 경영한 사실을 살펴볼 수 있다.

류건춘의 하회구곡시는 두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먼저 보통 구곡시는 주자의 ‘무이도가’를 차운하여 지었는데 비해, 하회구곡시는 자신이 정한 운으로 시를 지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구성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다. 대부분 구곡시가 서시를 앞에 두었는데, 하회구곡시는 구곡을 읊은 시를 먼저 내세우고 마지막에 ‘합곡시(合曲詩)’라는 결시(結詩)를 배치했다.

류건춘이 설정한 하회구곡은 1곡 병산(屛山), 2곡 남포(南浦), 3곡 수림(水林), 4곡 겸암정(謙巖亭), 5곡 만송(萬松), 6곡 옥연(玉淵), 7곡 도포(島浦), 8곡 화천(花川), 9곡 병암(屛巖)이다.

◆상류에서 1곡이 시작되는 하회구곡

하회구곡은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오면서 구곡을 설정했는데, 이것도 하류에서 1곡을 시작한 대부분의 구곡 설정 방식과는 다른 점이다.

1곡 병산은 병산서원 건너편에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산이다. 병산서원은 류성룡과 그의 셋째 아들 수암(修巖) 류진(1582~1635)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병산서원 만대루에서 보면 병산과 강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2곡 남포는 1곡에서 3.5㎞ 정도 내려간 지점인 낙동강 취수장 부근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남포의 흔적을 찾기가 어려운 환경이다. 당시에는 이곳 포구에 무지개 같은 다리, 즉 홍교(虹橋)가 있었던 것 같다. 류건춘의 아버지 류풍이 지은 ‘하회 16경’에 남포의 홍교를 읊은 시가 있어 당시 남포의 정경을 상상해볼 수 있다.

3곡 수림은 4곡 겸암정과 원지산 사이에 있는 상봉정 뒤쪽에 있었던 숲으로 추정된다. 이 수림은 저녁노을이 특히 아름다웠던 모양이다. 수림에 떨어지는 노을을 의미하는 ‘수림낙하(水林落霞)’는 하회 16경 중 하나로, 류풍은 시에서 ‘숲이 산허리에 있어 수림이라 하는데/ 푸른 강물 흐르는 물가에 높이 임하였네/ 외로운 해오라기 나란히 구름에 들고/ 밝은 노을 수림 깊은 곳으로 떨어지네’라고 노래하고 있다.

4곡 겸암정은 류운룡이 1567년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가르치기 위해 세운 정자로, 하회마을 건너편 부용대 상류 쪽 언덕 위 숲속에 자리하고 있다.

5곡 만송은 하회마을 쪽 강둑을 덮고 있는 소나무숲이다. 류운룡이 풍수지리로 볼 때 마을의 허한 기운을 보완하기 위해 1만여 그루의 소나무를 심어 조성한 숲이다. 이곳에 류운룡이 지은 정자 만송정이 있었으나 1934년 대홍수 때 허물어졌다고 한다.

6곡 옥연은 솔밭 맞은편 절벽인 부용대 아래의 굽이다. 류성룡이 귀향해 옥연 위에 지은 옥연정사가 지금도 옥연을 굽어보고 있다. 류성룡은 이 옥연정사에서 ‘징비록’을 저술했다.

7곡 도포는 옥연 하류에 있던 섬의 포구로 추정된다. 류건춘은 도포를 ‘강 모퉁이에 있는 외로운 섬’이라 묘사하고 있다. 낙동강이 굽이 도는 지점에 물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며 형성되었던 작은 섬으로 보인다.

8곡 화천은 7곡에서 하류로 좀 더 내려가 물굽이가 형성되는 지점이다. 화천 건너편에 류운룡을 기리는 화천서원이 있다.

9곡 병암은 화천서원 맞은편에 자리한 암벽이다. 화천을 지나 다시 서쪽으로 급하게 돌아 방향을 잡은 곳으로, 이 굽이 옆에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바로 병암이다.

◆류건춘의 하회구곡시

‘낙동강의 근원 있는 물 동쪽에서 흘러내리고/ 병풍바위의 우뚝한 절벽이 그것을 에워쌌네/ 구름 낀 병산에 서원 서니 강이 섬처럼 둘러/ 일곡이라 이름난 터에 버드나무 나부끼누나’<1곡 병산>

‘5리의 긴 시내 포구 남쪽으로 흘러가는데/ 운무가 반쯤 걷혀 삼필봉이 드러나 보이네/ 중류에는 나무꾼 피리소리 홍교(虹橋)에 이어지는데/ 이곡이라 두견화가 푸른 남기(嵐氣) 속에 빼어나구나’<2곡 남포>

‘노을 속 오리 나는 빛이 물 서쪽에 비단 같은데/ 갈고리처럼 연결된 돌 잔도는 하늘 오르는 사다리에 닿았구나/ 세찬 물결 속의 지주(砥柱) 바위 높다랗게 서 있는데/ 삼곡이라 흰 모래밭에 기러기 떼 내려앉는구나’<3곡 수림>

‘굽어보니 푸른 물결 부딪혀 역류하며 흘러가는데/ 하늘거리는 바위틈 대나무들 정자 옆에 서 있네/ 낚시 바위는 보였다 말았다 여울 소리는 오열하네/ 사곡이라 선조의 정자 십경에 들기에 손색이 없도다’<4곡 겸암정>

‘강의 반은 솔 그늘이 드리워 묶인 배를 덮고/ 삼동에는 눈이 덮이며 봄에는 봄기운을 띠네/ 꾀꼬리와 학의 울음소리 바람결에 뒤섞이는데/ 오곡이라 서리 맞은 단풍 적벽 앞에 붉구나’<5곡 만송>

‘백 길의 부용대가 옥처럼 맑은 물에 비치고/ 푸른 절벽 끊어진 곳에 물소리가 요란하네/ 나루 입구에서 맞이하고 돌아갈 때 전송하니/ 육곡이라 능파대에서 뱃노래가 들리는구나’<6곡 옥연>

‘강 모서리의 한 조각 외로운 섬 푸르고/ 지나가는 나그네 그림자 백사장에 길구나/ 깊은 가을 누런 숲은 손바닥처럼 평평한데/ 칠곡이라 농부들 노랫소리 원근에 들리네’<7곡 도포>

‘서원을 품은 맑은 시내 백사장을 빙 둘렀는데/ 산의 이름은 화산이고 아래 시내는 화천이라네/ 명륜당 높은 곳에 청금(靑襟)의 선비들 모여 있으니/ 팔곡이라 글을 읽는 소리 북쪽 물가까지 들리네’<8곡 화천>

‘사방으로 돌던 물결 곧장 아래로 내달리고/ 너럭바위 앞의 깎아지른 절벽 병풍 문이 되었네/ 깊은 못의 용이 포효하여 종담(鍾潭) 골짜기 갈랐으니/ 구곡이라 바람 세차고 밝은 태양 어둑어둑하네’<9곡 병암>

‘그림 같은 절벽 풍경 읊은 열여섯 편의 시/ 뱀에 사족 더하기 어렵고 물은 헤치기 어렵네/ 못난 나는 만년에 주자의 무이구곡시 좋아하여/ 감히 강가 거처를 작은 무이에다 견주었네’<합곡시>

‘열여섯 편의 시’는 류건춘의 아버지 류풍이 지은 시 ‘하회십육경(河回十六景)’을 말한다.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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