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작은 선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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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12   |  발행일 2018-04-12 제29면   |  수정 2018-04-12
[기고] 작은 선행
우성훈 (청구고 교장)

최근 점심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청구고 정문 옆에 버스정류장이 있다.

바람이 불고 조금 쌀쌀한 날씨였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점심 식사 후 정문 옆 아파트 상가의 문구점에서 학업에 필요한 참고서나 간단한 간식을 사러 가는 경우가 있어 학교 정문 앞을 잠시 순회하고 있었다. 그때 버스정류장 옆에 놓여 있던 주변 청소용 대형 쓰레기봉투가 바람에 넘어져 인도 위는 온갖 쓰레기로 범벅이 되었다. 그때 아가씨 한 명이 바람에 날리고 흩어지는 쓰레기를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주워 쓰레기봉투에 담고 있었다. 혼자서는 역부족인 것 같았다. 그 아가씨도 버스를 타러 온 듯해 보였다. 같이 도와줄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가 학교 주변을 10여 분 순회하고 돌아오니, 그때까지도 계속 쓰레기를 주워 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아가씨, 쓰레기봉투가 무겁죠? 제가 넘어지지 않게 잡고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하니까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계속해 국물이 남아 있는 컵라면 용기, 커피가 남은 종이컵 등 온갖 지저분한 쓰레기를 고운 맨손으로 주워 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코끝이 찡해졌다.

“아가씨, 나는 학교에 들어가서 손을 씻으면 되는데, 이런 손으로 버스를 타고 어떻게 외출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저를 따라와서 손이라도 씻고 가세요”라고 했다.

그가 “고맙다”고 하면서 학교 안으로 같이 왔다. 여교사 화장실에서 손을 씻은 후 나오는 그의 너무도 아름다운 마음씨에 고마움의 표현으로 음료수 1병을 손에 쥐여주고 배웅해줬다. 20대 중반의 곱고 순수한 아가씨의 마음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게 아쉽다. 우성훈 (청구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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