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세 이하만 난임시술 지원…임신 어려운 만혼여성 두번 울린다

  • 최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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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11 07:30  |  수정 2018-04-11 07:30  |  발행일 2018-04-11 제6면
지금은 만혼시대
20180411

만혼(晩婚). 사전적으로는 ‘나이가 들어 늦게 결혼함’이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그 속에 구체적으로 ‘늦은 나이’의 개념은 정해져 있지 않다. 사회 분위기에 따라 나이의 개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의 만혼 지표는 몇 살에 머물러 있을까.

지난해 대구에서 결혼한 남녀 두 명 중 한 명(50.5%)은 30대였다. 경북은 같은 기간 44.5%였다. 10년 전인 2007년 대구·경북 각각 30대 혼인자가 37.8%, 33.8%였던 것에 비하면 그 비율은 급격히 늘었다. 대구·경북에서 40대에 결혼한 이들은 2007년 100명 중 7명에서 지난해 100명 중 11명으로 늘었다.

30대에 결혼하면 일반적인 속도고, 40대 결혼 역시 이상할 게 없는, 이른바 ‘만혼시대’다. 영남일보는 만혼시대를 맞아 오늘을 살아가는 만혼자들의 고민을 짚었다.

◆만혼, 나이에 묶이다

김현민·장선아씨(가명·대구시 중구) 부부는 2년 전 이맘때 결혼식을 올렸다. 김씨 나이 47세, 장씨 44세였다. 주변에 비해 다소 늦은 시기였지만 신혼생활의 달콤함은 여느 부부와 다를 바 없었다.

다만 늦은 결혼으로 인해 자녀 문제에 있어선 부담이 컸다. 결혼 1년 뒤에도 아이가 생기지 않자 난임클리닉을 찾았다. 의사는 나이가 많아 임신이 쉽지 않을 수 있다며 체외수정 시술을 권했다. 자녀를 향한 한 줄기 빛을 확인한 순간 이들을 또 다른 난관에 직면했다. 1회 시술 때마다 300만~500만원 드는 체외수정 시술비를 부담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정부가 난임시술에 건강보험을 적용해 일반적으로 체외수정은 23만~57만원만 부담하면 된다. 하지만 지원대상에 만 44세 이하 여성이라는 조건을 달아 아내 장씨는 지원대상에서 제외됐다.

김씨는 “임신의 가능성을 병원에서 확인해 줬는데도 불구하고 여성의 나이만을 가지고 지원 여부를 결정한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아이를 낳고자 하는 사람이면 임신을 시도해 볼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 줘야 되는 것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대구시 38세·경북도 40세 제한
늘어나는 고령산모 시대 역행

자식 없는 고령의 신혼부부
아파트 청약 등 후순위로 밀려



대구와 경북 등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하는 난임지원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지원기준을 여성의 나이로 제한하고 있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각각 시·도비를 들여 한의사회와 함께 한방난임치료사업을 시행해 오고 있는데 대구시는 만 38세 이하, 경북도는 만 40세 미만 여성만 지원한다.

2년 전 결혼한 김모씨(여·40)는 만 38세였던 결혼 첫해에 대구시 한방난임사업의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임신에 실패했고 한 해 더 지원받고 싶었지만 이듬해부터는 나이 제한에 걸려 신청할 수 없었다. 김씨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대구시가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았지만 중앙정부의 난임지원사업보다 나이제한 기준이 더 낮아 아쉬웠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나 지자체는 여성의 나이가 많을수록 성과가 덜 나기 때문에 나이 제한을 두는 것 같다”고 하면서 “간절한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 정책이 있는 것 아니냐. 출생아 한 명, 한 명이 아쉬운 상황에서 이런 기준은 없애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비슷한 처지에 놓인 난임부부들이 나이제한을 없애달라는 내용으로 올린 청원 게시글을 여럿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정책 담당자들은 연령이 높아질수록 임신 가능성이 낮아지기 때문에 나이제한을 둘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대구시 건강증진팀 담당자는 “예산이 한정돼 있다 보니 임신 성공률이 높은 쪽을 지원할 수밖에 없다. 여성이 만 40세를 넘기니 임신 가능성이 현저하게 떨어졌다”고 말했다.

반면 결혼과 임신이 늦어지는 것과 더불어 의료기술 등이 발달하면서 고령 산모는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통계청에 따르면 35세 이상 산모 비율은 11.8%에서 26.4%로 크게 늘었다. 산모의 평균 출산 연령도 2006년 30.4세에서 2016년 32.4세로 2년 늦춰졌다.

◆만혼, 자녀에 묶이다

같은 신혼 생활이라도 만혼자는 자녀라는 요소에 더욱 영향을 받는다는 의견도 있었다.

2년 전 결혼한 이수현씨(39·대구시 남구 봉덕동) 부부. 이들은 결혼하기 전부터 자녀를 두지 않기로 합의했다. 일명 ‘딩크족(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 부부)’이다. 하지만 자녀의 유무는 이따금씩 신혼 생활에 걸림돌이 됐다. 가장 대표적인 게 주거 문제였다. 결혼 첫해 보금자리를 구하기 위해 신혼부부 특별공급 아파트를 청약하려고 했지만 자녀가 없어 지원대상에조차 오르지 못했다.

이씨는 “늦게 결혼하는 주변 사람들 중 자녀를 일부러 안 갖는 사람도 있고, 자녀를 갖고 싶어도 못 갖는 가구가 있다. 늦게 결혼했다고 해서 신혼이 아닌 것은 아니다”라며 “자녀 유무로 수혜 대상을 결정한다면 만혼 부부는 무자녀일 가능성이 높아 젊은 신혼부부에게 밀릴 수밖에 없다”고 입장을 전했다.

이 같은 논란이 이어지자 정부는 올해 상반기부터 자녀 유무에 관계없이 신혼부부가 아파트 특별공급 청약을 할 수 있도록 정책을 바꿨다. 하지만 여전히 유자녀 부부가 1순위, 무자녀 부부는 2순위여서 자녀 없는 만혼부부가 혜택을 볼 가능성은 낮다.

또 만혼으로 인해 자녀를 늦게 출산하는 경우들이 많아지면서 퇴직을 일찌감치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다.

구미 소재 대기업에 다니는 장모씨(46·구미시 인동동)는 “대기업이라 퇴사 시기가 비교적 이르다. 늦게 결혼하는 바람에 아들이 이제 4세인데, 대학 가기 전에 퇴사하면 어쩌나 고민이 크다”고 푸념했다.

최보규기자 choi@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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