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섬유·패션 세대교체 바람] <하> 전문가에게 지속발전 대책 들어보니…

  • 이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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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14 07:35  |  수정 2018-02-14 07:35  |  발행일 2018-02-14 제8면
“섬유 업종융합 필요” “인재육성 지속 관심” “선순환구조 구축을”

‘속도보다 방향이다.’ 섬유·패션업계 전문가들은 대구의 중심 산업을 이끌어갈 새로운 세대들에게 필요한 것에 대해 이같이 입을 모았다. 대구 섬유·패션산업의 재도약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일까. 복진선 한국섬유개발연구원 산업소재연구본부장, 김정숙 영남대 의류패션학과 교수, 윤석한 다이텍연구원 총괄기획본부장으로부터 이에 대한 조언을 들어봤다.

◆스트림 간 이업종 간 융합이 경쟁력

“전통 산업에서 탈피해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것을 중심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젊은 층이 흥미를 갖도록 기업 마인드도 바뀔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한국섬유개발연구원에서 만난 복진선 산업소재연구본부장은 섬유 산업 간 스트림 간의 융합을 강조했다. 그는 “소비자들이 점점 기능을 중시하고 색다른 것을 원하고 있다”며 “ICT 등 다른 업종과 연계하지 않는 이상 세계 시장에서 경쟁조차 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구에서는 이와 관련해 다양한 시도와 개발이 이뤄지고 있지만, 시장 진입에 있어 다소 시간이 걸리다 보니 자꾸 섬유산업이 사양산업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복 본부장은 최근 섬유업계에 진입하는 이들 중 제조분야보다 완제품 유통과 판매분야 개척에 나서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제조업이 워낙 인력 수급이 어렵고 원자재값·인건비 등 고정비용이 상승하는 데 비해 완제품 가격은 15년 전 수준이다보니 제조업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

그는 “제조업의 마진이 10여 년 전에는 최소 15%였는데, 지금은 10%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반면 완제품은 마진이 여전히 훨씬 높은 상황”이라며 “대구가 완제품이 아닌 미들스트림 중심 산업이다보니 이런 어려움에 더 크게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젊은이들이 기술을 배우지 않으려 하는 점도 미래를 암울하게 하는 요인”이라며 “아무리 자동화 설비를 들이고 기계로 대체한다 해도 반드시 사람의 기술이나 연구가 필요한 분야가 있다. 그러한 부분의 인력 수급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복 본부장은 전통적인 섬유분야가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잃어가는 추세에서 새로운 세대들의 진입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그러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먼저 나서 젊은 세대들에게 많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는 시대가 아니다. 많이 투자하는 것만이 경쟁력은 아니다”라며 “어떻게 지속적으로 이끌어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새로운 세대들이 섬유만 바라보고 고집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과의 융합을 반드시 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대구, 패션 인재 육성 중심지 돼야

김정숙 영남대 교수(의류패션학과)는 20여 년간 지역 인재들을 길러내며 패션업계 생태계의 변화를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느낀 인물이다. 그는 2010~2012년 <사>인터패션아티스트협회장, 2016년 패션문화협회장을 거쳐 현재 <사>한국패션일러스트레이션협회장을 맡고 있으며 2009~2010년에는 대구시 ‘창작 패션의 도시’ 사업 기획을 주도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외지로 진출하던 지역 출신 인재들이 최근 크게 줄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2000년대 들어 2010년까지만 해도 서울과 대구지역 진출 비중이 8대 2 정도였는데, 최근 들어 6대 4 정도로 바뀌고 있다는 것. 그는 “예전엔 아무리 힘들어도 서울이라는 동경을 품고 떠나곤 했는데, 아무래도 생활비의 부담 등이 크다보니 2010년 이후로는 대구로 리턴하는 이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구가 전국에서 패션 관련 지원 사업이 가장 많은 지역으로 손꼽히는 것도 이유로 분석된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다만 지역 인재들이 이 같은 지원에만 의존하는 형태는 타파해야 된다며, 98%의 노력과 결정적인 2%의 지원으로 성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패션산업이 너무 빠르게 변화하는 추세다. 크고 고급스러운 브랜드만 좋아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젊은이들에게 고마움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나타나고 있는 신진 패션시장 생태계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우선 내수시장에 곧바로 진입하기보다 국내외 패션페어 등에 참여하면서 제품력을 인정받는 식의 역마케팅 전략을 펼치는 경우가 많아졌다. 주문을 받은 만큼만 생산하고 재고를 두지 않으며 따로 쇼룸을 만들지 않아 임차료와 인건비 등도 아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으로 보인다.

또 시장에 진출할 경우 편집숍을 거치는 행태를 많이 보이고 있다. 베스트 아이템을 선보이고 브랜드 홍보 효과와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높은 수수료 부담은 단점으로 꼽힌다.

김 교수는 “최근 신진 디자이너들이 거치는 이러한 과정의 가장 큰 특징은 오프라인 매장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처음부터 거창하게 시작할 것이 아니라 자리를 어느 정도 잡은 뒤 백화점·로드숍 등 유통망을 다변화해 소비자와 접촉 통로를 늘려나가는 방식이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조언했다.

특히 그는 지자체와 관련 기관 등이 펼치는 사업은 대구를 기반으로 하되 전국을 무대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국의 인재들을 대구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고, 지역 섬유·패션을 이끌어나가는 일원이 될 수 있도록 길게 내다보고 그에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김 교수는 “패션은 문화산업이다. 단기간의 지원을 펼치거나 무작정 돈을 붓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사람을 키워내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한 번 키워내면 효율성이 높은 산업인 만큼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가격경쟁력보다 기술경쟁력

“빠른 동향 파악과 선제적인 준비·대응이 앞으로 살아남을지, 도태될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의지가 있는 젊은이들이라면 충분히 빠른 판단과 과감한 투자로 선순환 고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윤석한 다이텍연구원 총괄기획본부장은 양적 성장의 한계에 도달한 섬유산업이 이제 질적 성장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경기가 좋지 않다’는 말은 사실 전 산업에 해당된다. 준비를 많이 해왔던 기업들은 급격한 변화를 오히려 전환의 기회로 삼고 나아가지만, 준비하지 않은 기업들은 어려움에 그대로 직면해 쓰러지는 양극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윤 본부장은 최근 최저임금 인상이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갈 수밖에 없는 도화선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인건비 등 고정비용이 높은 상황에서 저가·대량공급 등으로 가격경쟁력을 내세우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 때문에 그는 부가가치가 높고 후발국들이 따라올 수 없는 비교우위 프리미엄 제품 개발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건비 부담을 덜 수 있는 방법으로 공정 자동화에 많은 투자를 하는 업체들도 늘고 있다. 특히 대구의 경우 스트림 간 연계가 잘돼 있다보니 쉽게 해외로 나갈 수도 없는 구조다. 수요기업과 연계해 바로 주문을 처리할 수 있는 것이 강점이기 때문에 인건비에 소요될 비용을 자동화 설비 투자에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정 자동화를 통한 스마트 팩토리가 구축되면 불량화를 최소화하고 데이터 축적으로 인한 체계적인 재고·생산 관리가 가능하며, 나아가 수요·공급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생산을 넘어 마케팅까지 효율화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되는 환경 관련 규제 강화에도 빠르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제직이나 봉제보다 해당 사항이 많은 염색업체들은 이에 대한 인력과 별도의 시설, 설비 비용 투자가 많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다만 지금 잘 대비하고 정리해 놓으면 중장기적으로 더 나은 방향을 꾀할 수도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윤 본부장은 “섬유가 곧 의류라는 공식은 깨진 지 오래”라며 의료·생활용 섬유산업은 고부가가치로, 산업용 섬유는 특화된 기술을 갖고 발전해 나가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진국들이 섬유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모든 산업에 활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자동차의 내·외장재, 의료용 봉합사, 인공 관절 등 모든 분야에 섬유가 쓰인다”고 말했다.

이어 “섬유·패션업계의 급격한 변화가 현실화되기 전에 기업들이 미리 준비했다면 지금과 같은 어려움은 덜했을 수도 있다. 설비투자 감소-매출 감소-인력 감축-재투자 감소 등 한 번 악순환 고리에 빠지면 헤어나오기 어렵다. 꾸준한 연구와 재투자로 전환의 기회를 잘 잡고 선순환 고리를 잘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연정기자 leeyj@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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