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인성교육- 작은 고민과 진심

  • 최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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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15 07:58  |  수정 2018-01-15 09:16  |  발행일 2018-01-15 제18면
“스스로 단점이라고 생각해도 누군가엔 문제 되지 않아”
20180115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불과 몇 주 전의 일인데, 그사이 해가 바뀌어 묵은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도 어김없이 남편에게서 크리스마스카드가 도착했다. e메일에 문자·카카오톡까지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통신 수단이 많은 세상인 데도 남편은 결혼기념일, 생일, 크리스마스 같은 중요한 날에는 꼭 손글씨로 카드를 보낸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남편이 로맨티스트라며 부러워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자랑질도 가지가지 한다며 질투하기도 하지만 남편이 손글씨 카드를 보내게 된 데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남편과 연애를 시작했던 그때로 되돌아가야 한다. 지인의 소개로 처음 전화통화를 하던 그날, 나는 남편이 약간 말을 더듬는다는 것을 단박에 알아챘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직업이 국어교사인 나의 귀를 속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미 30대 중반을 넘어 나이가 주는 지혜로움이 생긴 나는 일단 남편을 만나보기로 결정했다. 만나본 후에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도 늦지 않다는 것을 수많은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처음 만났고, 그 후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평소 긴장되면 말할 때 더듬는 남편
각종 기념일에는 손글씨 카드 전해
진심이 전해지면 걱정할 문제 아냐”


결혼 이야기가 무르익어 가던 어느 날, 남편은 정말 큰 비밀이라도 털어놓는 듯이 사실은 말을 좀 더듬는다고 고백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나 긴장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표시가 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고 했다. 그때 나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내게 처음 전화했던 그날부터 알고 있었다”고 말이다. 남편은 깜짝 놀라며 다시 물었다. 왜 한 번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느냐고 말이다. 내 대답은 간단했다. “당신이 말을 좀 더듬는다는 게 내게 문제가 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에요”라고 말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내게 처음으로 전화하던 그날, 남편은 혹시나 실수할까 하는 마음에 연습에 또 연습을 거듭했다고 한다. 그래서 정말 표시가 나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고 했다. 이날 나는 국어교사로서 예민한 청각을 가지고 있는 나 자신이 처음으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이때부터 잘 듣는다는 것이 내게는 소리를 잘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소리 너머 누군가의 노력과 마음을 알아봐 주는 것으로 그 의미가 바뀌었다.

남편은 모르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야 할 때, 또 여러 사람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할 때 부단히도 노력한다. 그럴 때마다 남편이 안타깝지만 언제나 내가 하는 말은 똑같다. “당신이 말을 더듬는다는 게 내게 문제가 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그건 아무 문제도 아닐 거예요.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어요.”

다시 손글씨 카드 이야기로 돌아가면, 남편은 사실 로맨티스트라서 카드를 쓰는 게 아니다.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처럼 무언가 낯간지러운 말들이 필요한 때에 자신이 더 말을 더듬게 된다는 사실을 깨우친 후에 나름대로 남편이 생각해낸 방법이 바로 손글씨 카드다. 해가 갈수록 카드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더니 이제는 3~4줄이면 다 채워지는 크기의 카드를 용케도 구해서 쓰지만 그 속에 담긴 남편의 마음만큼은 늘 진심이기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나의 버킷리스트엔 할머니가 되었을 때 남편이 보낸 모든 손글씨 카드들을 모아서 세상에 오직 한 사람 나만을 위한 책을 만들어야겠다는 항목을 추가하게 되었다. 이처럼 삶은 참 오묘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남편이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아내인 나는 각종 기념일에 남편이 보내는 카드들을 기다리고 또 그로 인해 내 삶의 버킷리스트가 계속 추가되고 있으니 말이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지금도 남편은 간간이 말을 더듬는다. 다만 오랜 시간 관찰해 본 결과, 남편은 여러 번 만나서 익숙해지고 또 만났을 때 편안한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는 신기하게도 말을 더듬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 부부의 일상 대화에서 남편은 더 이상 말을 더듬지 않게 되었다.

남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교사로서의 내 삶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담임을 하다 보면 많은 학생들이 크고 작은 문제로 고민을 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단점만 더 부각시켜 보는 것 같아 트라우마를 가지는 학생들도 종종 만나게 된다. 예전에는 이 학생들에게 어떤 말로 위로를 건네야 할지, 또 어떤 말로 자존감을 높여주어야 할지 정말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요즘은 이렇게 말해준다. “○○야, 네가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내게는 문제가 된 적이 없었어. 누군가에게 그건 아무 문제도 아닐 거야.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어”라고 말이다.

사실 이런 말이 우리 학생들에게 어느 만큼의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그저 나의 진심이 학생에게 전해지기를 소망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 학생들의 삶 속에 단 몇 명이라도 그런 것들이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줄 사람들이 존재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나혜정<대구 경서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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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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