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수능 대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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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25   |  발행일 2017-11-25 제23면   |  수정 2017-11-25
[토요단상]  수능 대박
노병수 칼럼니스트

인생에서 ‘가장 길었던 일주일’이 지나갔다. 조마조마 수험생들의 가슴을 태우던 대학수학능력고사가 마침내 끝이 났다. 지난주 포항 지진으로 수능이 연기되자 온 나라가 난리가 났었다. “일주일 더 수험생으로 살아야 한다니 끔찍하다. 멘탈 관리가 안 된다”라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해방(解放)을 눈앞에 두고, 갑작스레 긴장감을 이어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닌 모양이다. 그러나 ‘혼란 우려’보다는 역시 ‘안전 우선’이다. 지진의 실상이 보도되면서 종내에는 다들 승복하는 모양새를 갖췄다.

만에 하나 수능시험 도중에 지진이 나면 어떻게 될까.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큰 지진이 나면 논할 것도 없이 시험을 중단하고 피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 경우 시험은 무효처리가 된다. 그러면 진앙(震央)에서 멀어 시험을 무사히 치른 지역은 어떻게 하나? 어중간한 규모의 지진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놀란 수험생들이 우르르 뛰쳐나가면 감독관들이 과연 말릴 수 있을까. 그렇잖아도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다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것이 불과 얼마 전이다.

교육부에서는 급한 대로 3가지 단계별 수능시험장 운영방안을 마련했다. ‘가’는 지진의 진동이 경미한 경우로, 중단 없이 시험을 계속한다. ‘나’는 안전성이 위협을 받지 않는 수준으로, 책상 밑으로 대피를 했다가 시험을 재개한다. ‘다’는 진동이 크고 실질적인 피해가 우려되는 수준으로, 운동장으로 대피한다. 그러나 이 방안은 판단기준이 모호해 어떤 시험실은 대피를 했는데 다른 시험실은 계속해서 시험을 볼 경우가 생긴다. 그러면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된다. 감독관들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김상곤 교육부장관은 “수능 당일 지진이 발생하는 경우 대피결정을 내리는 감독관의 책임소재를 일절 따지지 않겠다”고 에둘러 발표까지 했다. 이어서 수능 당일에는 아예 포항에 상주하면서 만일의 상황에 대처도 했다. 당일 포항 한곳에 동원된 버스만 240대가 넘었다고 하니 그 긴장감은 상상을 초월했으리라 짐작이 간다. 사실 시험무효 사태는 상상조차 하기 싫다. 세월호의 경우 ‘세월호 특별법’을 마련, 단원고 수험생들을 ‘정원 외 특별전형’으로 구제했다. 그러나 수능의 경우 그것도 어렵다.

지진이 자주 일어나는 일본은 지진에 대비한 ‘고사(考査) 매뉴얼’이 있다. 그 기준이 ‘진도 6’이다. 그 이상이면 수험생들은 대피를 하고 시험은 무효가 된다. 그러나 그 이하라면 지진이 나더라도 시험을 치러야 한다. 프랑스에도 바칼로레아(Baccalaureat)라는 수능시험이 있다. 1808년 나폴레옹 시대부터 시행된 제도다. 우리와 달리, 일종의 자격시험으로 모두 주관식으로 일주일 동안 치른다. 바칼로레아는 난이도가 통일된 예비문제지가 있어 만일의 경우 재시험을 치르면 그만이다.

우리나라 수능은 그런 매뉴얼도 없고, 대체수단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잘 견뎌왔다. 칭찬을 해야 할지, 비난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수능은 정말 중요하다. 한 개인의 평생 살아가야 할 삶의 질이 단 하루 수능 결과에 따라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무한경쟁의 시대라고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제발이지 이제는 보란 듯이 제대로 된 대책이 나왔으면 한다. 사교육의 등쌀에 쉽지는 않겠지만, 수능을 대학입학 자격시험으로 바꾸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어쨌거나,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수능은 무사히 끝이 났다. 기성이 만들어낸 삶의 질곡을 잘 견디고 수능을 끝낸 젊은 영혼들이 못내 자랑스럽다. 그들 모두에게 ‘수능 대박’의 부적(符籍) 하나를 보낸다.

노병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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