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을 넘은 ‘권력’ 재벌, 韓사회를 삼키다

  • 유승진
  • |
  • 입력 2017-11-25   |  발행일 2017-11-25 제16면   |  수정 2017-11-25
한국 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

권력자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재벌
정권 창출·조종하는 단계까지 이르러
사적 소유와 시장 기능 전제한 가운데
공동체 이익에 맞게 새롭게 조정해야


20171125
지난 9월1일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열린 재벌택배 갑질 폭로 기자회견에서 김태완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CHAEBOL. 속칭 ‘재벌’이라고 불리는 대한민국의 기업집단은 이미 옥스퍼드를 비롯한 전 세계 유명 사전에 ‘고유명사’로 당당히 이름을 올린 지 오래다. 주식을 보유한 주주가 아니라 ‘오너 일가’의 이익을 위해 철저히 봉사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의 기본 규칙마저 가뿐히 뛰어넘는다. 오늘날의 재벌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은 로마의 라티푼디움과 같은 고대 계급사회를 연상시킨다. 극소수 지배계급의 특권적 삶과 절대 다수의 노예적 삶이 대비된다. 이 절대 다수는 명목상 시민이고 국민이지만 그들의 삶의 내용은 구조적으로 빼앗기고 이탈의 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분명 노예적이다.”

저자는 이처럼 현재의 한국 자본주의 문제를 고대 계급사회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또 권력의 하수인 혹은 동반자에서 스스로 권력을 손에 쥔 재벌을 ‘자본권력’이라 규정한다. 권력자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재벌 그룹이 어느덧 권력의 통제를 벗어나 스스로 권력이 되어버렸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20171125
안치용 지음/ 내일을 여는 책/ 264쪽/ 1만6천원

저자는 한국 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의 시작을 일제강점기로부터 본다. 현재의 삼성 규모에 해당했던 일본 노구치콘체른은 당시 대표적인 기업이었다. 저자는 노구치콘체른의 정경유착과 차입경영, 무차별적 사업 다각화는 오늘날 대한민국 재벌의 원형이 됐다고 주장한다.

미 군정기와 이승만정부를 거치면서 오늘날 재벌의 틀이 마련된다. 당시 친일·친미 세력을 중심으로 적산(일제시대 일제 소유의 재산) 불하가 시행되는데, 민족 자산이 돼야 할 적산이 기득권 집단으로 흘러 들어가게 된다. 한화의 창업자 김종희가 대표적이다. 그는 일본 경영진과 미군 장교와의 우호적 관계를 바탕으로 조선화약공판이라는 회사를 갖게 된다.

한국자본주의는 6·25전쟁 이후 전통적인 지주 계급은 몰락했으며, 이후 신분제도의 완전한 소멸과 함께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새로운 불평등이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다.

1961년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군부는 부정축재 혐의로 재벌 다수를 잡아들이며 국민적 지지를 얻고자 한다. 하지만 이병철 삼성 회장과 박정희의 밀실 회담 이후 양상은 바뀌게 된다. 경제개발 투자협력을 대가로 재벌들은 석방되고, 국가 재건이라는 이름 아래 정부의 집중적인 금융 지원을 받으며 중화학공업 중심 기업으로 거듭나게 된다.

전두환·노태우정부가 출범하면서 정경유착은 정점에 달한다. 이들의 정치자금은 상상을 초월했으며, 이는 1995년 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전 국민이 직접 목격하게 된다.

정경유착의 균형이 재벌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한 것은 참여정부 시절이다. 노무현은 재벌 총수가 모인 자리에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다”고 말한다. 투자라는 명목으로, 경기 활성화라는 명목으로 이제 재벌은 정부의 하수인을 넘어 하나의 권력이 됐다.

저자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말한다. 그 희망은 바로 ‘사회적 자본주의’다. 저자가 말하는 ‘사회적 자본주의’는 사적 소유와 시장 기능을 전제한 가운데 자본의 운용을 공동체의 이익에 맞게 조정하자는 것이다. 기업 경영에 다양한 이해 관계자를 참여시키고 연기금 의결권을 사회화하며, 상속 등에 관한 세제 개혁과 시민적 입법을 통한 자본의 전횡을 방지하자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실현 방안이다.

저자는 “희망 자체보다는 희망의 근거를 찾는 일에서 우리는 희망부재의 타파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 일은 절망을 깊숙이 또한 찬찬히 들여다보는 일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유승진기자 ysj1941@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