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규홍의 시시콜콜 팝컬처] 아르넬 피네다 스토리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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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24   |  발행일 2017-11-24 제39면   |  수정 2017-11-25
‘땜빵인생’도 그 자체로 빛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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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밴드 ‘저니’ 공연 모습. 작은 사진은 보컬리스트 아르넬 피네다와 멤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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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에 외신 문화란을 통해서 1980년대를 주름잡았던 록밴드 저니(Journey)가 2017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는 소식을 접했다. 정말 대단했던 이들이 이제야 어엿한 대접을 받는다는 사실이 조금은 새삼스럽다. 이랬거나 저랬거나 이런 반가운 뉴스를 알고 있는 사람이 내 주변엔 없다. 왕년에 저니의 히트곡을 즐겨 들었고, 지금도 그 노래들이 흘러나오면 추억에 빠져드는 세대조차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영미 팝음악에 대한 관심이 예전에 비해서 많이 식은 건 분명한 사실이다. 난 이 냉각기의 출발을 대중문화 콘텐츠가 직접배급 방식으로 바뀌기 시작한 1987년으로 본다. 공교롭게도 1970년대 말부터 세계적인 인기를 끌던 이 미국 밴드가 해산됐던 때가 1987년이었다. 한창 잘나가던 이들이 해체된 이유는 본인들만 아는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겠지만, 사람들은 그 이유의 중심에 보컬리스트 스티브 페리(Steve Perry)가 있다고 믿는다.

1980년대를 주름잡은 美 록밴드 저니
보컬 스티브 페리 독특한 음색이 한몫
87년 ‘불세출의 가수’ 탈퇴로 팀 해체
유튜브서 페리 닮은 목소리 발견까지
대타로 활동 재개·중단 반복 ‘암흑기’


比 무명 가수 아르넬 피네다 영입 화제
팬들은 ‘흉내’ ‘후임’ 등 이유로 냉담
하지만 그의 열창에 차차 돌아온 팬심
‘카피 버전’ 아닌 그 자체로 존재 인정
올초 ‘로큰롤 명예의 전당’ 등재 영예


아무래도 대중음악은 악기 연주보다 가수 목소리가 중심에 있을 수밖에 없는 탓에 저니도 스티브 페리가 흔들리자 침체기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쇳소리를 연상시키는 탁음임에도 섬세한 박자 감각과 서정성을 두루 갖춘 그는 같은 시기에 그들의 나라에서 인기를 끈 여러 가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스타 중의 스타였다. 보통 사람 머릿수에 따라 공평하게 번 돈을 나누는 미국 밴드의 속성상 그 속의 간판스타들은 돈 문제로 불만을 가지는 일이 많았다. 스티브 페리 또한 예외는 아니었고, 거기에 건강 문제가 그를 따라다녔다. 결국 이 불세출의 가수는 팀을 떠나게 되었고, 저니는 그를 대신할 보컬리스트들을 이리저리 구해서 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저니의 인기는 거기까지였다.

대타를 구해서 밴드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가 접기를 반복하며 암흑기를 맞았던 저니에게 새로운 계기를 찾아준 것은 바로 유튜브였다. 미국 CBS방송국에서 방송된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다룬 이 이야기는 진짜 드라마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감동적인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기타를 맡은 밴드의 리더 닐 션과 건반 연주자 조너던 케인은 주변 사람으로부터 유튜브에 스티브 페리와 비슷한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저니 노래를 부르는 영상이 있다는 걸 전해 들었다. 그 주인공은 필리핀에 사는 아르넬 피네다(Arenel Pineda)란 남자였다. 밴드 멤버들의 귀에도 그의 목소리는 완벽했다. 스티브 페리의 목소리가 거칠다면, 아르넬 피네다가 지닌 발성은 좀 더 청아하며 소절의 끝마디를 길게 빼는 습성(많은 동양인 가수들이 비슷하긴 하다)을 가졌지만, 눈을 감고 들으면 스티브 페리가 불렀다고 해도 의심하지 않을 만큼 감쪽같았다.

아르넬 피네다는 필리핀에서 서구 대중음악을 부르며 생계를 이어가던 가난한 가수였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치료비에 모든 가산을 탕진하고 남은 가족은 가난한 필리핀에서도 가장 빈민 축에 끼는 불우한 처지가 되었다. 넝마주이와 노숙을 하며 비참한 삶을 살던 아르넬 피네다에겐 음악이 있었다. 초라한 무대에서 노래하던 그에게 어느 날 엄청난 사건이 전해졌다. 처음에 저니 멤버로부터 팀에 들어올 생각이 없냐는 내용의 e메일을 받았을 때 그는 스팸메일인 걸로 알고 열어보지 않았으며, 수소문 끝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서야 자신에게 꿈같은 일이 벌어지게 되었단 걸 알게 되었다. 미국 공항출입국에 들어선 그에게 검색원은 어떤 일로 미국에 왔느냐고 물었고, 저니의 보컬리스트가 되려고 왔다는 말을 거기 있던 그 누구라도 믿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결국 한 명의 팬으로서 스티브 페리를 흉내내며 노래 부르던 그는 나이 마흔이 넘어 저니의 진짜 보컬리스트가 되었다. 체구도 작고 꼬질꼬질한 이 동양인에 대한 저니 팬들의 반응은 냉담 아니면 분노 둘 중 하나였다. 팬들은 그의 노래가 어쨌든 인정해 주길 싫어했다. 그 당시의 실황을 담은 영상을 보면, 아르넬 피네다가 얼마나 무시당하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은 그의 편이었다. ‘Faithfully’ ‘Separate Ways’ 그리고 ‘Open Arms’ 같은 저니의 히트곡을 온 힘을 다해 부르는 그의 모습에 팬들은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또 새롭게 팬이 된 젊은 세대에게 그는 스티브 페리의 후임이 아닌 저니의 목소리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TV쇼나 인터뷰 자료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 속 팬 가운데에는 이 글을 쓰는 나도 속해 있다. 언젠가부터 나는 저니의, 아니 아르넬 피네다의 목소리를 들으면 울컥 올라오는 뭔가를 느낀다. 말하자면 감정이입인데, 우리가 사는 모습의 가장 극적인 확장판이 그의 삶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한다. 아르넬 피네다는 지금 과연 행복할까? 그는 자신의 인생을 사는 동시에 과거를 빛냈던 누군가의 삶을 복제해서 살아야 하는 운명에 얼마나 만족할지 모르겠다. 우리는 저마다 닮고 싶은 누군가가 있다. 하지만 내가 그 사람의 카피 버전이 되고, 내 존재 자체가 다른 한 사람의 대체자로 만족해야 된다면 나의 삶이란 무엇일까.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전통적인 예술의 기예는 전임자 혹은 스승이 후임자, 즉 수제자에게 자신의 복사판이 되길 원했고 이 관계는 예술의 전통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예술계에 한 발을 디디고 있는 나는 아르넬 피네다와 같은 땜빵인생 또한 그 자체로 충분히 빛나는 인생살이의 한 가지 길이란 걸 깨닫고 있다.

P&B 아트센터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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