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원의 ‘영남일보로 보는 시간여행’ .29] 영일문화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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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24   |  발행일 2017-11-24 제20면   |  수정 2017-11-24
기아동포 구호금 마련 위해 6개월간 경북 순회공연
[박창원의 ‘영남일보로 보는 시간여행’ .29] 영일문화극장
영일문화극장이 기아동포의 구호기금 모금을 위해 키네마에서 개최한 대구 공연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영남일보 1946년 6월19일자)
[박창원의 ‘영남일보로 보는 시간여행’ .29] 영일문화극장
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굶주리고 헐벗고 오로지 동포의 구호의 손만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기아동포를 살리자고 본사가 그 구호금 획득을 목적으로 주최한 영일문화극장은 기보한 바와 같은 도내 순연을 앞두고 18일 대구공연으로 키네마에서 호화스러운 막을 열었는데 이날 오전 9시부터 부 각 국민학교 아동들이 감상회는 입추의 여지 없이 장내를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영남일보 1946년 6월19일자)


광복했지만 수해 등 기근 발생
‘영남일보 문화극장’모금 나서
문화계발·건국교육‘일석이조’


광복의 기쁨도 잠시, 시간이 갈수록 민중의 삶은 낭떠러지로 향했다. 광복 1년이 다 될 즈음엔 그야말로 생존의 벼랑으로 몰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5월에는 콜레라가 발생해 사람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또 전국적으로는 수해로 인해 많은 농작물이 사라졌다. 그러다보니 식량난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가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게다가 좌표를 잃은 미군정의 식량정책은 굶주림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켰다.

‘영일(嶺日)문화극장’이 기아동포를 돕겠다고 나섰다. 영일문화극장은 ‘영남일보 문화극장’이다. 굶주린 동포들의 구호기금 모금을 위해 영일문화극장을 만들었다. 모금 확산을 위해 경북도 순회공연을 계획했다. 이에 앞서 대구키네마에서 공연을 가졌다. 이날 공연은 기아동포를 살리자는 개회사에 이어 ‘최후의 심판’이라는 연극을 올렸다. 연극은 학동들의 뜨거운 박수 속에 끝났고 이 같은 공연은 이틀 동안 계속됐다.

‘∼경북도내의 식량 사정은 곤궁의 한계를 벗어나 기아노선에 방황하는 동족의 어마한 참경은 벌써 사경에 봉착되고 있는 현상이며 이 구제의 신속과 기동성 있는 긴급조치는 우리 민족의 당면과제임을 누가 부인할 수 있으랴!! 차제 본사에서는 이 기아동포 구제의 일익을 자진 담당하고자 여기에 물심양면적 희생을 불원하고 경향의술계의 제일인자로서 편성된 영일문화극장을∼’(영남일보 1946년 6월16일자)

영일문화극장은 왜관·구미·상주·안동·영주 등 경북도의 여러 지역을 6개월간 돌면서 모금운동을 벌이기로 계획을 세웠다. 순회공연에는 ‘최후의 심판’등 두 종류의 연극을 준비했다. 영일문화극장의 공연은 연극을 통해서 지역문화의 계발과 학생들에게 건국교육을 시키는 것으로 일석이조라는 찬사를 들었다. 게다가 뒤처진 농촌을 살려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강했다. 1947년 12월에 ‘영일계몽국’을 설립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영일계몽국은 시급한 농촌문맹 해결을 기치로 내걸고 활동을 벌였다.

경북도 공보과는 영일문화극장의 공연에 대해 연극을 보는 재미와 함께 굶주린 부민의 구제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당시 영남일보는 사회적인 공헌활동의 필요성이 생길 때마다 기구를 만들어 실행에 옮겼다. 이 같은 구호기금 마련을 위한 영일문화극장의 연극공연 등은 창간 직후 전재귀환동포 구원운동을 펼친 경험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언제나 그렇듯 그때도 재난은 예고없이 찾아왔다. 이재민 같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언론은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톡톡지역문화연구소장/언론학 박사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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