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일 칼럼] 칭다오맥주 대 아사히맥주

  • 박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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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22   |  발행일 2017-11-22 제31면   |  수정 2017-11-22
[박재일 칼럼] 칭다오맥주 대 아사히맥주

늦은 퇴근길 자주 가는 동네식당에서 늘 시키는 술이 있다. 중국 칭다오맥주다. 칭다오는 알다시피 식민제국 시절 독일 조차지였던 탓에 독일 맥주의 전통이 있다. 단골 주점에서는 640㎜ 큰 병 칭다오를 6천원에 판다. 300㎜ 병을 4천~5천원에 내놓는 곳에 비하면 싸다.

칭다오를 오랜만에 마주한 친구가 잔을 들이켜고 나서 갑자기 냉소적으로 변했다. “야, 기자 친구야. 중국이 허구한 날 사드로 한국을 까고 추방운동 벌이는데 니는 중국 맥주만 마시냐.” 전작이 있던 친구의 농반 진반 비아냥이었지만 갑자기 아차 싶었다.

사드는 지난해 초여름부터 대한민국을 둘러싼 아슬아슬한 외교전의 핵이었다. 세계 최강 미국이자 6·25전쟁의 혈맹인 미국이 배치를 요구하고, 세계 차강이자 역시 6·25 때 60만 군대를 한반도에 보내 미국과 일전을 겨뤘던 중국이 결사반대하는 첨단 레이더 탐지 및 요격 미사일 시스템이다. 중간에 우리가 딱 끼었다. 국내 정치적으로도 배치 찬반에 좌우가 갈린 채 사드는 떠내려왔다.

지난 6일 한국과 중국이 드디어 사드 갈등을 봉합했다. 이른바 우리의 ‘3불(不) 정책’이 피력된 점이 컸다. 이는 사드 추가 배치는 없고,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MD)에 편입되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동맹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우리 외교부의 공식 입장 표명이다. 문재인정부의 외교전 1막이 내려졌다고 할까.

3불을 놓고 우파 야당은 굴욕적 타협으로 비판한다. 한 국가가 생존을 가를 수 있는 무기체계를 지레 포기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국가주권을 포기했다는 시각이다. 실제로 빅터 차 주한 미국대사 내정자는 3불에 대해 “국가 안보와 관련된 미래 옵션(선택)을 배제하는 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우회적으로 우려를 표시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은 한국이 베이징에 굴복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드 외교전의 문재인정부를 평가하면 대략 80점 정도를 주고 싶다. 일단 우리는 중국이 반대한 사드를 현실적으로 배치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그 상태를 전제로 시진핑 국가주석의 입에서 “양국이 노력해 새 출발하자”는 발언도 나왔다. 중국도 한국과의 전면적 단절이 자신들의 국익에 손해일 수 있다는 초조감을 감추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한 것도 수확이다.

우리가 금방 망각하는 습성이 있어서 그렇지, 이 문제는 처음부터 만만치 않았다. 중국의 갈 데까지 간 겁박은 잊기 어렵다.

박근혜정부가 사드 배치를 발표하자 주한 중국대사 추궈홍은 “사드로 한·중 관계는 순식간에 파괴될 수 있다”고 발언했다. 외교관의 말로는 극한적 발언이다. 이후 인민일보의 “한국지도자는 소탐대실하지 말라. 한국은 사드 배치로 자멸을 초래할 것”이라는 협박과 환구시보의 “사드 배치 한국, 김치 먹고 어리석어졌다”는 야유가 이어졌다. 중국 정부는 “차후 발생하는 모든 뒷감당은 한국과 미국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사드 기지로 성주골프장을 제공한 롯데를 향한 중국인들의 위협적 폭력과 불매운동, 한국 연예인 차단은 말할 것도 없다. 전면적 보복이다. 오래전 한국이 아랍과 수교하면서 이스라엘과 단교하고,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으며 대만과 결별했을 때, 이스라엘이나 대만이 맞대응한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우리가 국력을 키운 이후로 미국과 일본도 공개적으로 그런 겁박성 발언을 한 사례는 없었다. 근 수십 년 동안 이처럼 외국으로부터 보복과 수모를 당한 적이 있었던가.

동네 술집도 한 군데만 갈 수 없으니 며칠 전 다른 단골집에 오랜만에 들렀다. 주인이 새로 가져왔다며 아사히맥주를 권했다. 역시 큰 병인데 8천원이다. 내가 저쪽 건너 집 칭다오가 맛있다고 했던 술 주정을 기억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니 나도 그동안 너무 중국에 경도됐던 모양이다. 한동안 일본을 잊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위안부나 독도로 늘 성가신 발언들을 하지만 우리 보고 ‘자멸’ 이런 말은 공개적으로 하지 않는 일본이다. 당분간은 아사히나 마실까. 심심하면 버드와이즈도 주문하고. 어쩌면 외교전도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잡념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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