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사랑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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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21   |  발행일 2017-11-21 제31면   |  수정 2017-11-21
[CEO 칼럼] 사랑의 기술
김재경 (<사>커뮤니티와 경제 소장)

오늘은 좋은 책 소개를 할까 싶다. 웬만한 분들은 이미 알고 있는 책으로, 에리히 프롬(1900~1980)의 ‘사랑의 기술(Die Kunst des Liebens)’이다. 에리히 프롬은 1930년대 독일 나치즘의 발생과 그에 동조한 대중의 사회심리적 원인을 밝히는 데 일생을 바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사회철학자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뛰어넘은 학자지만 적잖이 그들에게서 지적유산을 받았다. 프롬의 책 다수는 어렵고 딱딱하지만 ‘사랑의 기술’은 예외다. 그의 사랑론이 집적된 ‘사랑의 기술’은 의외지만 마르크스의 경제서에 그 뿌리를 둔다.

“인간을 인간으로서 생각하고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인간적 관계로 생각하라. 그러면 당신은 사랑은 사랑으로서만, 신뢰는 신뢰로서만 교환하게 될 것이다. 예술을 감상하려고 하면 당신은 예술적 훈련을 받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갖고 싶다면 당신은 실제로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발전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만일 당신이 다른 사람의 사랑을 일깨우지 못한 사랑을 한다면, 곧 당신의 사랑이 사랑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만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생명의 표현에 의해서 당신 자신을 사랑받는 사람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당신의 사랑은 무능하고 불행한 사랑이 아닐 수 없다.”

사랑으로써 다른 사람의 사랑을 일깨우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마르크스의 고언이다. 이 글은 마르크스의 ‘국민경제와 철학’이라는 책에 나온 글인데, 필자는 마르크스같은 경제학자가 이런 사랑론을 그의 정치경제학서에서 얘기했다는 것이 몹시 흥미로웠다. 기존의 딱딱하고 삭막한 전공서적 속에서의 마르크스가 아닌, 훨씬 인간적인 냄새가 나는 한 인간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롬 역시 ‘사랑의 기술’에서 마르크스의 그런 철학과 전통을 이어간다.

프롬은 오늘날 사람들은 사랑을 할 줄 모른다고 말한다. 사랑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항변할지 모른다. 그러나 프롬은 사랑을 얘기하면서 사랑하는 것은 간과하고 사랑받는 것만 생각한다고 지적한다. 프롬은 사랑은 대상의 문제가 아닌 의지와 능력의 문제라고 말하고, 사랑하는 법과 사랑하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일을 실패하면 사람들은 실패원인을 찾고 배우려고 하지만 사랑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다. 사랑을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음악, 예술, 건축, 공학 등을 배우듯 사랑의 기술을 배워야만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을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피아노를 배우면서 오랜 훈련속에 터득된 숙련성이 나중에 곡을 이해하고 미학적 감수성을 키우고 음악을 사랑할 수 있게 되듯이, 사랑도 의지와 절제·인내 속에서 반복 실천해야 우리도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렇다. 화분에 풀꽃 하나를 키워도 그렇다. 풀꽃의 생리를 먼저 배우고, 그에 따라 빛을 잘 볼 수 있도록 창가에 놓아주고 수시로 살피면서 정성을 기울이지 않는가. 풀꽃을 잘 키우는 것은 한두 번의 관심과 물주는 것이 아닌, 지속적으로 풀꽃의 생리를 이해하는데서 시작하며 그 키우는 지식과 기술이 늘 때 성장의 기쁨 속에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사랑도 연습이 필요하다.

필자를 포함해 누구든 현 존재는 엄청난 사랑의 결과물이다. 나를 키워준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갖고, 인내해주고, 표현하면서 자신들의 생명력의 일부를 준 사람들이다. 그 사랑을 먹고 우린 커왔다. 프롬은 이렇게 정리한다. “꽃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꽃에 물주는 것을 잊어버린 여자를 본다면, 우리는 그녀가 꽃을 사랑한다고 믿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사랑하고 있는 자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우리들의 적극적인 관심이다. 이러한 적극적 관심이 없으면 사랑도 없다.” 김재경 (<사>커뮤니티와 경제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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