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자 스토리가 있는 청도로… .7] 한옥의 아름다움이 살아있는 운강고택과 만화정

  • 임훈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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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21   |  발행일 2017-11-21 제13면   |  수정 2017-11-21
동강천 굽어보는 구릉지에 200여년 文風(문풍) 서린 양반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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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군 금천면 신지리에 자리한 운강고택의 사랑채 주변 전경. 넓은 마당을 중심으로 사랑채, 중사랑채, 대문채, 고방채가 자리하고 있다.

‘고택마을’로 잘 알려진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는 유유히 흐르는 동강천 변의 구릉지 위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 주변을 굽어흐르는 하천은 완만한 퇴적지형을 이뤘지만, 마을 서남쪽으로 절벽과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어 아늑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신지리는 ‘섶마리’로도 불리는데, 마을이 조성 당시 잡목이 많아 이러한 이름이 붙었다고도 하고, 동강천에 놓였던 섶다리 때문이란 설도 있다. ‘떠나자! 스토리가 있는 청도로’ 7편은 한옥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에 대한 이야기다.

#1.조선 후기 양반고택의 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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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강고택에는 사랑채와 별도로 조성된 ‘ㅁ’자형의 안채가 자리하고 있다. 여성들의 주거공간인 안채 주변에는 행랑어멈이 기거했던 행랑채와 창고 등이 자리하고 있다.

신지리에는 조선 후기 양반 고택의 전형으로 꼽히는 운강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 중종때 문신인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淡)이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신지리에 터를 잡았다. 소요당의 후손인 박정주(朴廷周)가 200여 년 전 분가하면서 운강고택을 세웠다. 현재 신지리에는 운강고택 외에도 여러 고택이 자리하고 있으며, 소요당의 후손들이 번창해 밀양박씨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청도 사람들은 소요당이 신지리에 자리잡은 이유로 청도의 지리·문화적인 특성을 꼽고 있다. 청도는 군 중심부의 곰티재를 중심으로 산동·산서 지역으로 나뉘는데, 고개 동쪽인 산동지역의 경우 산지로 둘러싸인 데다 관아마저 없어 문풍을 일으키는데 상대적으로 어려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소요당은 산서지역인 이서면에서 성장했지만 산동지역 선비들과 교류가 많았고, 지역의 학문을 일으키기 위해 신지리를 낙점했다고 한다. 현재의 신지리는 옛 정취가 가득한 고택마을로 청도의 대표적인 명소가 됐다. 인근 운문사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빠뜨리지 않고 들르는 청도 관광의 필수 코스로 자리매김 중이다.

#2.사대부 집안의 한옥 구조를 엿보다

금천면 소재지인 동곡리 남쪽의 금천교를 건너면 신지리다. 다리를 건너 250여m를 걸으면 도로 왼편 골목 안쪽에 운강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운강고택은 마을의 고택 중에서도 안채와 사랑채 등 옛 사대부 집안의 한옥 구조가 온전하게 남은 거의 유일한 집이다. 중요민속자료 106호로 지정된 운강고택은 전체적으로 ‘ㅁ’자 형태를 띠고 있어 안정적인 느낌이 든다.


금천면 신지리 마을 밀양박씨 집성촌
문신 박하담이 후학 양성하려 터 잡아

후손 박정주 분가하며 운강고택 세워
사랑채+안채+사당 ‘ㅁ’자 구조 한옥
운문사 방문객이 찾는 관광 필수코스

고택 부속건물 만화정 동강천변 자리
6·25전쟁때 이승만 묵은 곳으로 유명



운강고택은 크게 3개의 공간으로 나뉜다. 사랑채와 안채·사당으로 구성돼 있으며 곳곳에 정원이 자리하고 있어 포근한 느낌이 들면서도 답답하지 않다. 짜임새 있는 구조와 필요에 의해 구분된 각 건물의 평면 배치와 공간 구성이 조화를 이루는 특징을 갖추고 있다.

가장 먼저 방문객을 맞이하는 것은 입구에 자리한 대문채다. ‘운강고택’이라 적힌 현판 아래 자리한 대문은 예부터 이곳이 사대부 집안의 가옥이었음을 증명하듯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다.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면 강학 장소로 활용됐던 중사랑채가 보인다. 한옥의 간결한 선이 돋보이는 수수한 건물이다. 중사랑채는 ‘백류원(百榴園)’으로도 불린다. 조선 중기 유학자 한강 정구 선생이 성주에 매화 100그루를 심어 세운 백매원의 이름을 따 백류원이라 명명했다고 전해진다. 과거 중사랑채 뒤뜰에는 수많은 석류나무가 심겨 있었다고 한다.

대문 왼편의 사랑채 또한 학문을 논하는 남성들의 공간이다. 수많은 시인묵객이 이곳에서 묵었다. 사랑채의 방에서 뒷문을 열면 안채 뒤뜰의 정원이 보이는 특징이 있다. 사랑채와 안채를 구분하는 담에도 눈길이 간다. ‘꽃담’으로 불리는 이 담에는 꽃무늬와 함께 ‘길(吉)’자가 가로로 새겨져 있고, 그 위아래로 직선과 원이 교차하는 무늬가 그려져 있다. 꽃담은 남녀가 유별했던 조선 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하면서도 한옥 건축의 미적인 부분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사랑채 마당을 지나 중문채를 통과하면 안채 공간이 드러난다. 안채는 사랑채보다 약간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다. 안채는 집안의 대소사가 이뤄지는 중요한 공간이었고, 가문의 중요한 행사인 제사 역시 안채에서 지냈다. 안채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등 여성들이 주로 머물렀던 장소다. 안채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방과 부엌으로 구분된다. 마루 앞에는 섬돌 대신 나무로 만든 디딤판이 설치돼 어린이나 여성을 배려했다. 안채 주변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정원이다. 특히 안채 뒤편의 정원은 오롯이 여성들만의 공간이었다. 뒤편의 정원은 안채 마당만큼 넓지만 남성들의 눈길이 닿지않는 은밀한 공간이었다. 특히 정원에 자리한 일곱 개의 큰 바위가 눈에 띈다. 이는 ‘칠성신앙’으로 대변되는 거석숭배의 흔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여성들은 정원에서 새벽기도를 올리거나 자손의 번창을 기원했을 것이다. 사랑채 오른쪽의 며느리 방 옆에는 사람 한 명이 겨우 드나들 수 있는 ‘판문’이 나 있다. 주로 며느리와 아들이 이용했다.

중문채 맞은편의 행랑채는 집안의 허드렛일을 하는 행랑어멈이 기거하던 곳이다. 행랑채에는 부엌과 함께 방과 디딜방앗간 등이 자리하고 있다. 알곡을 보관하는 창고 또한 안채를 중심으로 배치돼 있어 한 집안을 건사하는 맏며느리의 권위를 엿볼 수 있다. 성별에 따라 이용하는 문도 달랐다. 여성들은 사랑채에 기거하는 손님들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주로 안채에서 고방채를 지나 대문과 연결돼 있는 내외문을 이용해 집을 드나들었다.

#3.이승만 대통령이 머물렀던 수양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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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강고택의 부속건물인 만화정의 모습. 소요당의 12세손인 박시묵이 1856년 세웠으며, 6·25전쟁 때는 이승만 대통령이 묵었던 곳이기도 하다(위). 만화정 앞을 흐르는 동강천의 옛 모습. 금천면 동곡리와 신지리를 잇는 다리가 없었던 시절에는 나룻배를 이용해 양 마을을 오갔다고 한다. 소나무숲 왼쪽에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정자인 세심대가 보인다.

만화정은 운강고택의 부속건물로 동강천 변에 자리하고 있다. 소요당의 12세손인 박시묵(朴時默)이 1856년 세웠다. 정자는 마루를 중심으로 서쪽에 1칸의 방이, 동쪽에 2칸의 통방이 자리하고 있다. 정자 앞쪽의 누마루는 3면에 난간을 둘렀으며, 건물 앞쪽으로 기울어지는 본래의 지형을 그대로 활용한 특징이 있다. 정자를 찾았던 이들이 많았던 때문인지 정자와 함께 관리사와 창고도 함께 위치해 있다.

누마루에서 바라본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운문댐 건설 전 동강천 수량이 더 풍부했던 점을 감안한다면, 100여 년 전 이곳에서 풍류를 즐기고 학문을 닦았을 선비들의 즐거움은 더 컸을 것이다. 동강천 건너편에서 본 만화정 역시 한 폭의 그림 같은 느낌이다. 절벽 위에 자리한 정자의 도도한 모습에서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소요당의 깊은 뜻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볼 수 있다.

만화정은 6·25전쟁 때 이승만 대통령이 묵었던 장소로도 유명하다. 당시 동강천 주변으로 피란민 수십만명이 모여들었고, 이승만 대통령은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청도를 찾았다. 당시 대통령이 묵었던 방은 지금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관리상태가 좋다. 방에는 수십 년 전 흑백사진이 걸려있는데, 동강천에 떠 있는 나룻배와 더불어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세심대라는 이름의 정자를 볼 수 있다. 운강고택과 만화정은 평소 문이 닫혀 있는 경우가 많다. 신지리의 관광안내소를 찾거나 단체 관람객의 경우 청도군 문화관광과(054-370-2378)에 미리 문의하는 것이 좋다.

글=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공동 기획 : 청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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