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오너세프를 찾아서- ‘강변어탕국수삼계’ 이범섭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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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03   |  발행일 2017-11-03 제41면   |  수정 2017-11-03
약골이던 그를 위한 할머니의 ‘어탕삼계’…맛·정성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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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탕 국물에 삼계탕을 결합한 어탕삼계. 하절기 별미로 사랑받고 있다. 작은 사진은 어탕삼계의 주재료인 민물고기와 영계. 여느 어탕집과 달리 이 집에선 잉어, 붕어, 쏘가리 등 큰 민물고기를 사용하는 게 특징이다. 또한 잡내 제거를 위해 두 종류의 약초도 첨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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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탕국수. 국물이 뻑뻑해지는 걸 막기 위해 밀가루는 중력분, 끓이기 전에 사리는 한번 데쳐 전분을 제거한 뒤 사용한다.

‘강변어탕국수삼계’.

도대체 저 음식이 뭐지? 다들 아리송해 한다. 어탕이야 국수야 삼계탕이야. 세 음식이 다 섞여 있다. 어탕국수란 간단한 음식이 아니다. 추어탕 만드는 조리법보다 훨씬 까다롭고 어렵다. 칼국수와 매운탕을 혼합한 스타일인데 이게 잘 섞이게 하려면 고도의 요리기술을 동원시켜야 된다.

지난달 지인의 소개로 성당못 대성사 근처 기사식당거리 중간에 있는 그 어탕집을 찾았다. 주인 이범섭씨. 올해 54세인 그는 요리에 일가견이 있어야 성공적인 식당을 만들 수 있다는 통념을 깨트린 자수성가형 오너셰프. 툭하면 미소를 연발하지만 나름 울음 가득한 근육을 속으로 질박하게 다져왔다. 아버지(이동명)는 5남매를 위해 안동시 임동면 간고등어길 중간 지점인 챗거리 근처에서 농사를 지으며 지금까지 살고 있다. 아버지는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함으로 무장한 분이다. 자식한테 살가운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았다. 장남인 그에겐 그게 한이 되었다. 하지만 자신도 이제 결혼하고 아이 낳고 세파에 시달리다보니 아버지의 그 무심함이 결국 ‘가족 먹여살리기의 고단함’이란 걸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고향 안동서 유학 ‘주경야독’ 치열한 삶
30대 중반 시작한 섬유무역업 내리막길
45세때 ‘고향·추억의 맛’ 어탕식당 창업

두류공원 주변 터잡고 꿈 따라 상호 작명
10년간‘어탕·국수·삼계탕’ 다양한 시도
잡어류 대신 잉어·붕어·가물치 등 사용
두 약초로 잡내 제거…‘어탕 명가’ 눈앞


안동에서 살다가 경북대 농과대에 입학해 대구로 나온다. 대학시절은 집 형편이 바닥이었다. 학비 및 생활비를 직접 해결해야 하는 상황. 재학 중 섬유회사에 몰래 들어간다. 주경야독의 시절이다. 오후 4시30분에는 어김없이 이현공단으로 갔다. 당시 공단은 대학생 출입금지 공간이었다. 그는 위장취업을 해서 겨우 생계비를 벌었다.

30대 중반에 독립해서 섬유 무역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중국산 기계로 인해 경쟁력을 잃어버렸다. 섬유업은 사양길. 45세 때 식당의 꿈을 향해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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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미각…사업에 활용

어탕전문점을 하게 된 이유가 있다. 학창시절 그는 무척 약골이었다. 툭하면 병치레였다. 할머니가 애지중지하던 손자에게 가장 잘 해먹였던 음식이 ‘어탕삼계’였다. 덕분에 건강을 좀 찾을 수 있었다. 어탕삼계는 경상도 하절기 별미 보양식의 하나였다. 언뜻 ‘매운삼계탕’ 같다. 삼계탕의 느끼함은 매콤한 어탕을 만나면서 새로운 맛을 형성한다.

조리사자격증도 없었다. 하지만 자신 있었다. 남다른 미각 때문이다. 멀어지는 고향, 그리고 고향을 생각할 때마다 어탕삼계가 생각났다. 고향의 맛을 직접 대구 도심에서 재현해보고 싶었다. 창업 전 짬을 내 경남 거창과 산청, 충북 옥천 등 전국 유명 어탕집을 벤치마킹하러 다녔다. 팔공산·비슬산 올라가는 길, 들안길 등 대구에서 어탕 잘하는 업소를 찾아다녔다. 어탕삼계, 어탕국수, 어탕수제비, 어탕국밥 등을 하나씩 섭렵해갔다.

통상 어탕은 어르신들이 젊은이보다 더 좋아한다. 자칫 젊은 층과 소통을 못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면 장기적으로 승산이 적다고 봤다. 어르신 못지않게 젊은 층 공략에도 소홀할 수 없었다. 어탕이 어르신의 음식이란 고정관념을 깨야만 했다.

민물생선 국물에 밥·수제비·국수가 합쳐지는 게 어탕. 전분과의 싸움이 승부처다. 전분이 과도하면 뻑뻑해져서 식감을 극도로 추락시킨다. 국물과 전분과의 황금비율을 연구해야만 했다. 국물이 빨간 어탕집들이 드물었다. 대다수 추어탕처럼 무채색인 경우가 많았다. 보기 좋은 게 먹기도 좋다고 했다. 회색 계열은 상대적으로 식감이 떨어져서 거기에 고춧가루를 적당량 첨가해야 된다는 걸 알았다. 그 고춧가루는 고향에서 농사짓는 아버지가 전량 조달해준다.

◆적당한 고기 골라내기의 어려움

장소를 물색했다. 두류공원 대성사 주변 도로는 기사식당 밀집구역. 현재 6개가 몰려 있다. 두류공원 주변 어르신도 많아 어탕을 즐겨 찾을 것 같았다. 오픈하기 전 선몽이 있었다. 깊은 산속 옹달샘에서 물이 펑펑 솟아나는 광경을 보게 됐다. 그 물줄기를 따라 내려오니 강이 되고, 그 물이 바다가 되었다. 철학관에 가서 꿈얘기를 했다. 길조다. 상호에는 반드시 ‘강’ 자가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권유했다. 그래서 정해진 상호가 바로 강변어탕국수삼계.

처음에는 메뉴가 꽤 많았다. 어탕전골, 피리조림, 매운탕, 어탕만두 등 13가지 정도가 됐다. 당시 지역에서 어탕만 파는 전문 식당으로선 가장 메뉴가 많았다. 초창기 단골들은 너도나도 이 집 어탕에 대해 입을 댔다. 그건 가게에 대한 ‘관심’이었다. 어탕에 약초를 넣는다는 건 평소 생각도 못했다. 어느 날 ‘옛날에 그걸 넣고 끓여봤는데 정말 맛있다’란 단골의 말에 움찔했다. 당장 그 약초를 넣었다. 약초 덕분에 잡내가 사라졌다. 점심 때는 너무 바빠서 대기를 해야 한다. 혼자 오는 손님도 많다. 어떤 손님이 테이블을 반으로 자르면 더 많은 사람이 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장 절단했다. 그래서 테이블 수가 늘어났다.

벽 한쪽 ‘덕분에’란 문구가 눈길을 끈다. 사연이 있다. 도인처럼 생긴 한 단골이 이 문구를 권했다. ‘손님 덕분에 지금의 우리 가족이 살고 있다’는 일종의 감사의 표현인 것이다.

손님이 많아지자 메뉴관리를 효율적으로 할 필요가 있었다. 요리 시간은 10~15분. 메뉴를 확 줄여 5개로 간추렸다. 현재 어탕국수와 수제비가 제일 많이 팔린다. 여름철에는 어탕삼계가 많이 나간다. 여긴 반주를 안 판다. 테이블 회전을 원활케 하고 식사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밀가루 반죽이 문제였다. 어탕에는 중력분이어야 한다. 강력분을 사용하면 면이 딱딱해지고 박력분은 너무 물러 내려버린다. 냉면처럼 밀가루에 탄력을 주기 위해 감자전분을 일정한 비율로 넣어봤다. 더 졸깃했다. 수제비는 끓는 물에 한번 넣어 전분을 제거한 뒤 국물에 넣어 한소끔 끓여낸다. 안 그러면 뻑뻑해진다. 동절기와 하절기, 조건이 너무 다르다. 그때마다 비율을 조정해야만 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덜 퍼지는 그만의 황금 반죽비율을 갖게 된다.

◆기본육수 내기

현재 사용하는 물고기는 잉어, 붕어, 메기, 가물치, 빠가사리 등 10여종. 다른 집에도 보통 하천에서 잡아온 잡어류가 주전멤버인데 여기는 다르다. 잉어, 붕어, 가물치 등이 들어가는 게 특징이다. 잉어는 민물어종의 왕자. 잉어 옆에 붕어가 붙으면 매우 구수하고 깊은 맛이 난다. 그냥 일반 잡어류만으로 깔면 맛이 얇다. 메기도 감칠맛을 내는 데 매우 요긴하다. 이 놈이 안 들어가면 씁쓸한 맛이 스며나온다. 모든 내장은 반드시 없애야 된다. 내장은 비린맛의 원천이다. 딱 두 종류의 약초를 사용한다. 비린맛을 잡고 구수한 맛을 더해준다.

고기를 끓이기 전에 피를 최대한 빼야 한다. 내일 사용할 건 오늘 잡아서 핏물을 빼야 한다. 대형압력밥솥에 모든 고기를 비율대로 약초와 함께 넣고 3시간 고아 진액으로 만든다. 그걸 큰 찜통에 넣고 다시 1시간 고아낸다. 뼈를 걸러낸 육수를 적당량의 양념(고춧가루, 마늘, 생강 등 12가지 정도를 넣어서 만듦)을 넣고 1시간 끓인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 육수에 국수를 넣는데 대구에 있는 신갈산막국수로부터 사리를 받아서 사용한다. 수제비는 감자전분을 섞어 매일 50인 분량을 미리 만들어 하루 숙성시킨다.

끓이는 시간이 부족해도 넘쳐도 안 된다. 너무 빨리 나오면 국물은 멀겋고 싱겁다. 너무 오래되면 국물은 빡빡하고 짭짤해진다. 요즘은 국물 표정만 봐도 된 건지 안 된 건지 다 안다. 오픈한 지 4년 만이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액자에 담아 벽에 걸어놓았다. 2015년 어느 날 무뚝뚝한 아버지가 그를 보고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다. 아내가 고추밭에 나란히 선 부자를 촬영해줬다.

어탕의 종착역은? 90% 정도 온 것 같고 아직 갈 길이 10%로 정도 남았단다. 체인점은 극구 사양하고 직영점은 한두 곳 더 차리고 싶단다. 그는 가족 중심 어탕명가를 향해 진군한다.

국물이 식자 식욕이 더 올라갔다. 그릇에 남은 국물이 한 점도 없다. 휴일은 매월 둘째·넷째 일요일. 오전 11시부터 영업. 달서구 성당동 459-5. (053)627-8891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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