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우리는 얼마나 서로를 이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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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25   |  발행일 2017-09-25 제30면   |  수정 2017-09-25
핵가족시대의 자식사랑
타집단엔 극도 이기주의
정현종 시인 시 ‘섬’처럼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아침을 열며] 우리는 얼마나 서로를 이해하는가
박소경 호산대 총장

며칠만 지나면 추석이다. 여전히 많은 가정에서 차례를 모실 것이며, 제사 형식이 아니라도 그에 상응하는 의식을 치를 것이다. 흩어져 사는 핵가족이 모이면 오랜만에 할머니 아파트는 사람으로 가득 찬다. 평범한 일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절, 어린 남매와 젊은 부부였던 때를 떠올려보자. 부모의 바람은 무얼까? “건강해라, 그리고 너희들이 사이좋게 지내면 제일 좋겠구나.”

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이타주의를 ‘맹목적 이타주의’와 ‘목적성 이타주의’로 구분했다. 맹목적 이타주의란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이타주의를 가리키며, 목적성 이타주의란 궁극적으로는 이기적인, 보답을 기대하는 이타주의를 의미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모든 사회 행동은 생물학적 현상에 불과한 것으로, 정신 또한 생존과 번식을 위한 장치일 뿐이다. 그리고 한 생명체가 죽은 후 다음 세대에 남길 수 있는 물질은 오직 DNA뿐이다. 맹목적 이타주의는 가장 가까운 혈연에게로 향하고, 그 관계가 멀어질수록 강도는 급격히 줄어든다. 대부분의 젊은 부모는 자식에게 헌신적이다. 핵가족화 되면서 더욱 두드러진 강렬하고도 끈질긴 ‘자식 사랑’은 타 집단에 대해서는 극도의 이기주의를 발휘하게 만든다. 그래서 에드워드 윌슨은 “혈연에 의한 맹목적 이타주의는 문명의 적”이라고까지 말했다. 부끄럽게도 우리는 ‘사촌이 논 사면 배 아픈’ 민족. 하물며 먼 타인에게는 어떻겠는가? 지금 우리 사회는 이익 집단뿐 아니라 종교 집단마저도 내부 결속과 텃세를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텃세는 생존 본능인 공격성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니던가.

나이가 들수록 더 관대해지고 더 현명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불행히도 그렇게 하지를 못한다. 가족 간에도 내집단과 외집단을 만들며, 정신의 노화로 인한 경직성은 편견과 오해의 골을 깊이 판다. 나이가 부모의 순수한 사랑을 목적성으로 변하게 만든다면 그 나이야말로 ‘슬픈 나이’가 아닐까?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를 펼쳐 본다. “성스럽고 거룩한 근원어, ‘나-너’는 참되고 충만한 관계다. ‘나-너’는 ‘나-그것’이 지배하는 세상 아래서 기쁨을 잃지 않게 만든다. ‘나-그것’은 한 사람이 진정으로 ‘너’라고 부르는 인간의 본질을 모른다. ‘나-그것’은 표면을 돌아다니면서 한 존재의 ‘일부’만을 보며 그 사물에 만족한다. 한 존재자의 전체를 보고서도 그 존재를 거부하지 않는 ‘나-너’는 인간적 한계 너머일 것이다.” “사랑은 ‘나’에 집착하여 ‘너’를 단지 내용이라든가 대상으로서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나’와 ‘너’ 사이에 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 자신의 온 존재를 기울여서 이것을 깨달은 사람이 아니면 비록 그가 체험하고, 경험하고, 표현하는 감정을 사랑이라 부른다 하여도 그는 사랑을 모른다. 온 존재를 기울여서만 말할 수 있는 사랑에 자기를 바치는 사람은 자기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이것은 우주적인 작용이다.” “사랑이란 한 사람 ‘너’에 대한 한 사람 ‘나’의 책임이다. 여기에는 다른 곳에서는 있을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만 있는 ‘한결같음’이 있다.” 부버의 ‘나-너’를 읽으면 부모의 순수한 사랑이 먼저 생각난다.

우리는 도덕과 윤리 측면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으면 허물이 되지 않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유학이 강조한 아버지다움과 아들다움, 기독교의 이웃 사랑, 일본의 배려와 예의 바름, 서양 상류사회의 관대함, 우리는 그 어느 것도 강요받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잘하고 있는 건지, 반성할 부분이 없는지, 좀 더 선한 쪽으로 갈 수는 없는 건지.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두 줄로 쓰인 정현종 시인의 ‘섬’이다. 이해할수록 행복해지고 멀어질수록 외로워지는 관계,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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