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강아지 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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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23   |  발행일 2017-09-23 제23면   |  수정 2017-09-23
[토요단상] 강아지 똥
노병수 칼럼니스트

“강아지 똥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그래서 어떻게 착하게 살 수 없을까 늘 고민을 한다. 닭이나 흙으로부터 한참 조롱거리가 되었지만, 마침내 민들레의 거름이 되어 예쁜 꽃으로 환생을 한다.” 권정생 선생의 동화 ‘강아지 똥’의 줄거리다. 1969년에 발표된 이 책은 그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60만부 이상이 팔렸고, 그에게 제1회 한국아동문학상을 안겨주었다. 특히 그림책이 인기가 있어 어린아이가 있는 부모들이 즐겨 찾는다.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은 1937년 도쿄 혼마치의 빈민가에서 막노동꾼 아버지와 삯바느질을 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광복이 되자마자 조선인연맹에 가입한 형들과 생이별을 하고 귀국을 했다. 그러나 살 집이 없었다. 누나는 아버지를 따라 고향 안동으로, 그는 남동생과 함께 어머니를 따라 외가가 있는 청송으로 흩어졌다. 이듬해 다시 모여 소작과 행상으로 연명을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전쟁이 터졌다.

전쟁은 선생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난리 통에 몹쓸 결핵까지 걸렸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집을 나온 그는 김천, 상주, 문경, 점촌, 예천을 떠돌며 걸인 생활을 한다. 결핵으로 온몸이 불덩이가 되어 길에 쓰러져 있다가 간첩으로 오인도 받았다. 그 무렵 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 우여곡절 끝에 선생은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에 있는 일직교회 종지기로 정착을 했다. 덕분에 교회 문간방에서 마음껏 글을 쓸 수가 있었다.

여름이면 찌는 듯이 덥고 겨울마다 동상에 걸리는 집이었지만, 그에게는 더없는 보금자리였다. 방 안에서 개구리가 울어댔고, 생쥐들이 이불 속을 들락거렸다. 나중에는 생쥐들과 정이 들어 아예 발치에다 먹이를 두고 기다리게 되었다. 메뚜기도 굼벵이도 한 가족이었다. 그가 쓴 맑디맑은 동화와 명징하기 그지없는 글들은 모두 이 문간방의 식솔들에서 나왔다. 대표작 ‘몽실언니’가 나온 것도 이곳에서였다.

‘몽실언니’는 전쟁과 가난에 허덕이지만 꿋꿋이 살아가는 한 절름발이 소녀의 감동적인 이야기다. 100만부 이상이 팔려 베스트셀러가 됐다. 후일 MBC 드라마로도 방영이 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선생은 ‘무명저고리와 엄마’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고, 자전적 창작동화 ‘황소아저씨’와 ‘한티재 하늘’ ‘밥데기 죽데기’ 등을 잇따라 집필한다. 인세만 해도 연간 수억 원에 달하는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올랐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선생의 생활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가난에 포원이 져서 한 번쯤은 돈을 씀 직도 하다. 하지만 7평 남짓한 토담집 하나를 지었을 뿐, 인세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수령에서 관리까지 모두 지인에게 맡겼다. 선생이 100여 편의 주옥같은 동화와 소설을 남기고 2007년 타계했을 때, 사인은 결핵과 그에 따른 합병증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난 20일 결핵이 아니라 의료사고로 숨졌다는 사실이 10년 만에 밝혀졌다.

이를 모르고 영면한 선생은 하늘나라에서 억울해할까. 선생이 남긴 두 차례의 유서를 보면 그렇지는 않을 듯하다. 이승에 대한 회한은 있어도 삶에 대한 애착은 없다. 그저 자신의 재산을 세계 곳곳의 굶주리는 어린이들을 위해 써달라는 얘기만 가득하다. 이 유언에 따라 그의 유산은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이 관리를 한다. “교회나 절이 없다고 이 세상이 더 나빠질까요?” 그의 어록 1장 1절에 나오는 말이다.

임종 순간 선생은 내내 어머니를 찾았다. “아이들 읽으라고 글 몇 줄 남기고, ‘어메 어메’ 외치다가 돌아가셨다. 조선의 새는 모두가 운다. 웃으며 노래하는 새는 한 마리도 없다.” 어느 평론가의 조사(弔辭)가 서럽다. 노병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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