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아비의 마음Ⅱ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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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22   |  발행일 2017-09-22 제23면   |  수정 2017-09-22
20170922

강원랜드는 ‘청탁랜드’다. 조사 결과 2012년에서 2013년 사이 채용한 신입사원 518명 중 493명을 국회의원 등의 청탁으로 부정합격시켰다. 청탁을 통한 합격자가 신규 선발자의 95%나 되니, 이게 대명천지에 있을 법한 일인가. 강원랜드는 이와 관련해 지난 11일 “1960∼70년대에나 있을 법한 미개한 범죄”라고 고백하고 참회했다. 이 과정에 당시 여당 소속이었던 이 지역구 자유한국당 권성동·염동열 국회의원이 무더기로 인사청탁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본인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줄을 댄 지역의 유력인사들의 윤곽이 속속 드러나고 있으니 어떤 식으로든 혐의는 밝혀질 터이고, 또 반드시 그렇게 돼야 한다.

강원랜드가 송두리째 힘 있는 자들의 먹잇감이 됐다. 더 기가 막히는 건 우리의 수사기관이 이를 인지하고도 제대로 수사를 하지 못했다는 현실이다. 2016년 2월 강원랜드로부터 수사의뢰를 받은 춘천지검은 344명에 이르는 청탁 정황과 자격 미달자 등 271명의 부정합격을 파악했다. 하지만 검찰은 사장과 인사팀장 단 두 명만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을 뿐 채용을 청탁한 ‘불상의 다수’는 기소대상에서 모두 뺐다. 엄청난 전과를 올리고도 사건의 몸통인 청탁자들은 모두 풀어준 것이다.

전례 없이 긴 올 추석 연휴, 강원랜드와 검찰은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씹히고 또 씹히게 됐다. 검찰의 ‘부실 수사’에 대한 질타와 함께 재수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터져나오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아쉬움과 찜찜함은 남는다. 금수저 흙수저 논란은 쉬 사라지지 않고, 이 땅의 수많은 청년실업자들의 한숨과 절망은 갈수록 더 깊어지고 있다. 청년 실업이 사상 최악인데…. ‘체감 실업률’로 환산하면 청년 4명 중 1명이 실업자다. ‘금수저’들의 들러리 노릇을 한 줄도 모르고 자신의 능력 부족을 한탄하며 낙담하는 ‘흙수저’들의 억울함은 누가, 어떻게 풀어주나.

자녀들에게 흙수저를 쥐여준 흙수저 부모들은 또 어떠할까. 아마도 흙에 코를 박고 숨을 멈추고 싶은 심정일 게다. 나는 2년 전 이 난(欄)에서 ‘아비의 마음’이란 제목의 칼럼을 통해 ‘아비의 마음은 국회의원이든, 고위 공직자든, 백도 줄도 없는 장삼이사(張三李四)든 그 경중(輕重)이 다르지 않다’고 썼다. ‘국립대구과학관은 2013년 공채시험 비리로 최종합격자 24명 중 9명을 불합격 처리했는데, 이들 중 3명은 고위 공무원 자제였다. 채용특혜에 연루됐던 한 고위공직자는 합격 취소된 아들을 바라보는 처연(悽然)한 심정을 아비의 마음이란 글로 올렸다가 공분(公憤)을 사기도 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공공기관의 채용특혜비리조차 빙산의 일각이라는 게 정설이다. 공정함의 마지막 보루여야 할 대학마저 부정입학으로 뚫리는 지경이니 부정청탁에서 자유로운 기관을 찾기 어렵다. 네이버는 진경준 전 검사장의 딸에게 과외를 제공하고 부장판사 아들을 인턴으로 청탁 채용한 사실에 대해 최근 공식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감사원이 지난 3월부터 53개 주요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점검을 한 결과 39개 기관에서 채용비리가 100여건이나 적발됐고, 채용특혜를 준 수법 역시 점수조작에서부터 채용인원 확대에 이르기까지 담대(?)하기 짝이 없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비율과 수를 넘어서는 불신과 비리 불감증이고, 그나마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공정 분야가 공무원시험밖에 없으니 ‘공시족’이 확대재생산 되는 것이렸다.

김영란법과 블라인드 채용 등 청탁방지를 위한 법과 제도는 지금도 결코 미흡하지 않다. 김영란법은 우리의 일상을 규제할 정도로 강력한 효과를 내고 있지만 여전히 국회의원 등 특수 기득권층, 소위 큰 고기들에게는 아직 힘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 공기업 사장 자리를 정권의 전리쯤으로 생각하고 낙하산을 내려보내는 관행부터 채용특혜 아닌가. 조직의 리더가 정통성을 가지지 못하니 외압과 청탁에 휘둘릴 수밖에. 문재인정부는 블라인드 채용을 말하기 이전에 공기업 직원들의 꿈을 짓밟는 낙하산 인사부터 없애라. 그래야 인사청탁 잘못 했다가는 큰코다치게 하는 일벌백계도 비로소 영이 서지 않을까.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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