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본질 잃으면 존재가치도 사라진다

  • 노인호
  • |
  • 입력 2017-09-21   |  발행일 2017-09-21 제30면   |  수정 2017-09-21
[취재수첩] 본질 잃으면 존재가치도 사라진다
노인호기자<경제부>

2003년 6월12일 대구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9차 국정과제회의. 취임한 지 넉 달도 안 된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에게 가장 적게 표를 준 대구(24만745표, 18.67%), 그다음으로 적게 준 경북(31만1천358표, 21.65%) 지역민들 앞에서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대구 구상’을 처음 발표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지방화’를 반드시 이뤄야 할 국가발전의 핵심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다”면서 “전국이 개성 있게 골고루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자신의 임기 중에 서울로만 올라오던 이삿짐 보따리를 다시 지방으로 내려보내는 전환점을 만들겠다고 했다. 지방을 혁신의 주체, 역동적 발전의 주체로 착실히 육성해 나감으로써 ‘지방화를 통한 국가의 선진화’를 실현해 나가도록 하겠다는 약속이었다.

그가 지방을 살려야겠다고 나선 이유는 간단하다. 수도권 중심의 불균형한 국가발전은 빠르고 압축적인 산업화에는 기여했지만, 그 결과 수도권은 심각한 과밀의 문제에 시달리고 지방은 정체와 저발전의 악순환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이 상태를 더 방치하면 수도권은 수도권대로, 지방은 지방대로 경쟁력을 잃어버리고 공멸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던 것. 지방이 다시 일어서 국가를 재도약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지방육성 정책으로 국가발전 패러다임을 전환시켜야만 했다. 수도권 인구집중을 완화하고, 자립형 지방화 및 수도권 질적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 바로 ‘공공기관의 지방이전’이었다.

이후 참여정부는 2004년 4월 국가균형발전특별법에 법적근거를 마련하고 같은 해 8월 공공기관 이전방안의 기본원칙과 추진방향을 발표, 다음 해 6월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무회의에 최종계획안을 상정, 확정했다. 그렇게 2014년, 한국가스공사가 대구로 오게 된 것이다.

단순히 본사를 옮긴 게 아니라 수도권 집중 전략으로 불가피하게 스스로 일어설 힘을 빼앗겨 버린 대구를 살리는 역할을 하기 위해 온 것이다. 해외 원산지에서 액화천연가스(LNG) 상태로 수입, 이를 다시 기화, 편안하게 앉아서 도매업자들에게 독점공급하던, 땅 짚고 헤엄치는 장사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지역균형 발전을 위해 혁신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이라는 또 하나의 존재가치가 더 생긴 것이다. 이 두 가지 존재가치는 좌우 날개로 하늘을 나는 새와 같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가스공사는 하나만으로 날아갈 수 있다고 우기는 모양새다. 태어난 가치와 성장한 가치를 제대로 알고, 좌우 날개로 힘차게 앞으로 날아가는 한국가스공사의 모습을 기대한다.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는 성경 구절이 떠오른다.
노인호기자<경제부>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