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학의 전통문화이야기] 옛 생활용품의 색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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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20 08:08  |  수정 2017-09-20 08:09  |  발행일 2017-09-20 제30면
20170920
대구시문화원연합회 사무처장

색은 나름의 기운이 있고 서로 연결고리를 가지며 저마다 쓰임, 나타나는 현상이 다르다. 그래서 색을 쓰는 데 있어서도 그 성질을 구분했다. 음양오행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점은 극단으로 치닫지 않으면서 섞이고 어우러져 균형을 이루는 것이다. 꼭 알맞게 자리하여 스스로를 지키는 동시에 서로 모자란 부분을 채우거나 더욱 돋보이는 것을 제일로 쳤다. 이른바 상생과 중화다.

모든 색은 완벽한 독립 공간에 홀로 존재하지 않는 한 고유의 성질을 지킬 수 없다. 어디에, 어떻게 놓이는가에 따라, 빛의 영향에 따라 사뭇 다른 성질로 변하기 때문이다. 옛 생활용품의 색채 특징을 보면 사용자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옛 생활용품의 색 쓰임은 사뭇 다르다. 여성용품은 곱고 맵시 있는 여인네를 그대로 닮았으며, 때로는 새침한 새색시 같다. 사랑방 용품들은 점잖고 말수 적은 선비 같다. 재료에 따라 꼭 알맞은 색을 골라 썼음을 알 수 있다. 넓은 면과 좁은 면, 텅 빈 여백과 가득 찬 빽빽함, 소박함과 화려함, 지루함과 흥겨움, 침묵과 수다, 들숨과 날숨 같은 대조이면서 동시에 공존이 어울리는 미학이다. 음악적 가락과 같이 서로 손을 맞잡고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멋들어진 화음을 이룬다. 여인네들이 주로 사용했던 기물에는 생동과 생명력이 한껏 뿜어져 나오는 명도와 채도 대비, 보색 대비가 강한 원색이 쓰였는가 하면(안방용품-화각, 칠보, 자수 등), 고상하고 맑으며 소박하고 차분한 색이 주를 이루었다(부엌용품-식기류). 난색(暖色)의 성질은 명랑하고 가벼우며 앞으로 튀어나오는데 한색(寒色)은 차분하고 새침하며 뒤로 물러선다. 이 또한 화려함을 즐기되 지나치지는 않으려는 조화의 절제의 색채 미의식이다.

자수용품은 이상하리만치 원색의 조밀한 배치를 통한 화려함으로는 으뜸일 정도로 명도와 채도가 높은 색을 좁은 면에 빼곡하게 썼다. 한결같이 화려하여 흥겨운 잔치를 보는 듯하다. 마치 단청에서와 같은 색 배치를 보여준다. 색끼리 서로 맑고 밝은 다채로움을 강조하여 조형적인 면에서도 독특한 화면 연출을 보여준다.

사랑방에서 주를 이루는 기물은 나무로 만든 것이다. 진중하고 묵직한 갈색 계열이다. 주인인 남성의 성정에 맞추어 기개와 검소함이 강조되어 안방에 비하면 인색하다 싶을 만치 치장을 아꼈다. 그러나 옻칠로 짙은 고동색을 내 자칫 무겁고 칙칙해 보일 수 있는 가구는 자물쇠 앞바탕이나 광두정, 경첩, 거멀쇠 등의 장석을 달아서 제 역할을 하면서 조형과 배색에서도 조화를 이루려는 뜻이 뚜렷하다.

옛 생활용품은 기술적인 면에서나 색상 배치와 조형적인 면에서나 뛰어난 솜씨를 보여준다. 화려함과 소박함, 역동과 고요, 뛰쳐나가는 힘과 붙들어 매는 힘, 뻗어나가는 가지와 버티는 뿌리 같은 균형과 조화의 미의식이 엿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활동적으로 뛰노는 어린아이와 집에서 맞이하는 어머니의 모습 같이 맡은 역할이 따로 있고 서로 어우러져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 이 시대에 색채에 대한 심리적 작용을 모르고서야 어찌 이렇게 쓸 수 있었겠는가 싶다. 대구시문화원연합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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