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이 확 달라졌다” 범죄를 쫓는 벽화

  • 박태칠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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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20   |  발행일 2017-09-20 제14면   |  수정 2017-09-20
계명대 프레스코 봉사단
대구 안심 노후 주거지
가스공사 후원받아 개선
주민·경찰·공무원도 격려
골목은 마치 잔치 분위기
20170920
계명대 미대 시각디자인과 프레스코 봉사단원들이 벽화를 그리고 있다.

경부고속도로 통로박스(굴다리) 27번 남쪽지역인 대구시 동구 안심3·4동 18통 주변 골목. 북쪽 지역이 대구혁신도시로 개발되면서 남쪽의 노후화된 주거지는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보였다. 몇 건의 절도사건이 발생한 데다 밤길이 무섭다며 동부경찰서에 주민제보가 잦은 곳이다.

지난 16일 이 골목 남쪽 끝에 위치한 ‘고향방앗간’ 앞에 한 무리의 발랄한 여대생들이 나타났다. 이곳에 재능기부 봉사활동인 벽화그리기를 위해 모인 계명대 미대 시각디자인과 프레스코 봉사단(회장 장수현)이었다. 이미 올 상반기 동구 신천동 청소년 우범지대였던 A빌라 주차장에 벽화를 그려 동네 명소로 만든 베테랑들이다.

학생들은 익숙한 듯 오자마자 바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붓을 들었다.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면서 동부 119시민 안전봉사단(단장 박성동) 회원 6명도 함께 나섰다.

이날 벽화그리기는 동부경찰서 생활안전과가 주민들의 불안심리 해소를 위해 동구자원 봉사센터의 협조를 얻어 ‘엄마품길’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하는 CPTED(셉테드) 사업의 첫 작업이다. 셉테드는 구도심, 좁고 어두운 골목길, 낡고 칙칙한 담장, 방치된 공터 등 취약 지역의 디자인을 개선해 범행 기회를 심리적·물리적으로 차단하고 지역 주민에게 심리적 안전감을 주는 범죄 예방 환경 디자인을 말한다. 동구자원봉사센터에서는 한국가스공사의 후원을 받아 골목환경개선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조용하던 동네에 벽화를 그린다는 소문이 나자 동네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윤곽을 드러내는 모습에 칭찬이 쏟아지고 벽화가 그려지는 담장 주인에게는 “저렇게 예쁘게 벽화를 공짜로 그려주니 오늘 한턱 내야 되겠소”라며 농담도 한마디씩 건넸다. 방앗간 사장님은 농담 때문이 아니라 전날부터 담장 및 주변 정리작업을 한 데다, 학생들을 위해 백설기 한 시루를 쪄놓은 상태였다.

학생들의 봉사활동에 마을주민들과 경찰·행정복지센터 공무원들이 찾아와 격려와 함께 음료수·바나나 등 먹을 것을 제공하다보니 골목은 마치 작은 잔치가 벌어진 것 같았다.

벽화는 골목입구 양쪽 담장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해 점심 때가 되자 농촌의 목가적인 풍경을 선사하기 시작했다. 푸른 구름, 형형색색의 집들이 있는 초원의 풍경이 마음을 평안하게 했다.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벽화를 마무리한 학생들은 프로 못지않은 장인정신을 보여줬다.

비번인 데도 아침부터 종일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교통정리를 하던 동부경찰서 생활안전과 박정수 경사는 “골목이 확 달라졌다”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자원봉사센터 직원 김재엽씨가 마지막으로 짐을 정리하고 떠나자 동네는 이내 캄캄해졌다. 하지만 벽화가 그려진 골목은 더 이상 무서워 보이지 않았다.

글·사진=박태칠 시민기자 palgongsan7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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