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측은지심의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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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9-19   |  발행일 2017-09-19 제31면   |  수정 2017-09-19
[CEO 칼럼] 측은지심의 경제

맹자의 양혜왕(梁惠王) 편에 보면 양과 소를 바꾼 이야기가 있다. 왕이 대전에 앉아있을 때 어떤 사람이 소를 끌고 가는 것을 보고, “그 소 어디로 끌고 가느냐”고 묻자, “혼종(제사의 제물로 바치기 위해)에 쓰려고 합니다”라고 답하였다. 그러자 왕이 “소를 놓아주어라. 부들부들 떨면서 죄없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을 차마 못보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그 사람이 “그러면 혼종의식을 폐할까요”라고 하자, 왕은 “혼종을 어떻게 폐할 수 있겠는가? 소 대신 양으로 바꾸어라”고 하였다.

이 글을 보고 혹자는 왕의 태도에 대해 소를 잡든 양을 잡든 다 제물로 바치는 의식인데 눈앞에 죽음의 두려움에 떠는 소가 지나간다 하여 양으로 바꾸라고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이 글은 ‘본다’는 것의 의미, 즉 ‘보는 것’은 ‘만남’이고 ‘관계맺음’임을, 그리고 그 만남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인간의 측은지심의 본성을 설명한다. 눈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부들부들 떠는 소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불쌍하고 측은한 마음이 드는 인간의 마음, 측은지심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어느 인간인들 눈앞에서 어린이가 위험한 우물가에서 노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겠느냐고 설파한 맹자의 이야기 역시 ‘보는 만남’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 본성을 설명한다.

사회적 목적 실현을 위해 수행하는 경제활동으로서의 사회적경제는 ‘좋은 사람’을 전제로 한다. 사회적관계 속에서 타인을 배려하고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것들을 기꺼이 나누는 사람들의 활동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기는 녹녹지 않다. 사람들을 믿기에는 공동체의 토대가 약하고, 사회에 대한 불신의 골은 여전히 깊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경제는 더 필요하다. 사회적경제는 ‘좋은 사회’를 만들겠다는 목적으로 기존의 영리기업과 비영리조직의 장점을 섞은 혁신적 기업 유형이다. 사회적경제 기업들은 민주적 운영원리를 토대로 해서 공동체의 문제나 취약계층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비즈니스 활동을 한다. 나아가 구성원들의 자발성을 최대한 일깨워 공감·신뢰·협동의 경제공동체 속에서 서로를 좋은 사람으로, 좋은 시민으로 성장시킨다는 가치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

오래전 읽은 고(故) 장영희 교수의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핵전쟁이 났는데 동굴에 여섯 명밖에 들어갈 수 없다. 학생들에게 수녀, 의사, 맹인, 교사, 창녀, 가수, 정치인, 물리학자, 농부, 본인 이렇게 나열하고 이 중 동굴에 들어갈 여섯을 고르라고 하니 제일 먼저 나가떨어진 대상이 정치인, 반드시 들어가는 사람은 본인이었단다. 의외로 치열한 토론은 맹인을 둘러싸고 벌어졌는데 그때 한 학생이 이런 이야기를 하였단다. 전쟁을 끝내고 남은 사람들이 사회를 복구해야 할 때 모두 자기 일에만 매달리면 다시 미움과 갈등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구성원들이 일단 맹인을 받아들이면, 구성원들은 그 사람을 돌봐야 하는 숙명 속에서 시간을 쪼개어 그를 도와야 할 것이고 이 행위를 통해,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배려하는 마음과 가치를 배울 것이다. 그러니 맹인을 반드시 살려야 한다는 논리를 폈단다.

살기가 어려운 것은, 형식적인 삶의 무게보다도 서로를 사랑하며 위로하고 서로가 살아있어야 할 존재임을 알아주는 장치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을 때가 더 많아서이다. 우리의 삶터와 일터에서 ‘같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무엇인가를 함께 고민하고 ‘나눌 수 있도록’, 그리하여 작지만 절실한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곳이 될 수 있도록, 사회적경제는 더 적극적으로 제 역할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공동선을 머리 맞대고 숙고하는 과정에서 사회적경제인들 스스로가, 스스로의 선한 도덕심을 일깨우고 바른 원칙을 지켜나가는 시민정신을 성장시킬 수 있도록 늘 살펴야 할 것이다.

사회적경제 조직 안팎으로 서로에게 연민을 갖고 서로를 인정해주는 바른 규칙을 만들고 지켜나가는 것, 따스한 마음을 놓치지 않고 측은지심의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경제활동을 지속해 나가는 것, 그것이 사회적경제가 가야 할 길임을 되새겨 본다. 김재경 (<사>커뮤니티와 경제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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