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지 못하는 부모·비정규직 자식…남의 일 아니다

  • 유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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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22   |  발행일 2017-07-22 제16면   |  수정 2017-07-22
가족의 파산-장수가 부른 공멸
20170722
가족의 파산-장수가 부른 공멸//NHK 스페셜 제작팀 지음/ 홍성민 옮김/ 동녘/ 232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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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살던 노모는 건강 악화로 딸 부부와 외손자와 동거하게 됐다. 딸 부부는 고령의 어머니를 집에 혼자 둘 수 없어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어머니의 연금과 합해 생활했다. 그러나 그런 빠듯한 생활도 오래가지 못했다. 어머니가 병환으로 수술과 입원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딸 부부는 병원비를 감당할 여유가 없었다. 그 일이 노모를 힘들게 했다. “수술비며 병원비 때문에 딸에게 부담을 주느니 죽는 게 낫다”며 막다른 곳에 내몰린 노모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머니가 내린 결론은 자살이었다.


NHK제작팀, 日 고령화 사례 취재
연금액 삭감·공공서비스 자가부담…
신자유주의적 복지정책 폐해 지적
“韓 노인 빈곤율 OECD 최악 수준
단편적 문제아닌 韓사회 닥친 현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사례 중 하나다. 부모와 자녀가 동거하며 생활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는 이제 우리에게 현실이 됐다. 연금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예금을 탕진하는 노인, 일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젊은이, 워킹푸어, 부모님 간병, 비정규직 사회, 고독사, 노후파산까지. 장수를 기뻐하며 밝은 미래를 기대하는 것은 이미 옛 이야기가 됐다. 나이가 들어 자식과 함께 사는 것이 왜 불행한 일이 됐을까.

이 책은 일본 NHK 스페셜 제작팀이 취재한 고령화 가족 사례를 바탕으로 인구 초고령화라고 불리는 인구 구성의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일본에서, 그간 20년 넘게 진행된 노동의 유연화 및 신자유주의적 복지정책 실시(연금 수령액 삭감, 의료비나 돌봄 등 공공 서비스 자가 부담 증가) 등의 폐해가 현재 고령자와 그 가족들이 겪고 있는 비참한 빈곤 문제로 드러나고 있음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특히 한 가족 내에서 고령자의 빈곤 문제와 고령자의 자녀나 손주들의 빈곤 문제가 연쇄적으로 일어나면서 한 일가족 전체가 파산에 이르렀거나 파산 직전의 예비군 상태인 점, 즉 빈곤이 세대로 이어지면서 심화되고 악순환하고 있는 점을 사회적 배경과 함께 이야기한다.

책은 비정규직 노동자인 자식, 연금으로 살수 없는 부모,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노인, 자립할 수 없는 자녀, 간병을 하면서 나타나는 현상 등 다양한 문제를 일본의 실제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책이 강조하는 점은 지금 나타나는 모든 현상이 단편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청년 실업의 증가는 자녀의 독립을 늦추는 현상을 낳고, 이런 현상으로 부모들은 나이가 늘어도 일을 하게 된다. 자신의 건강을 돌볼 여유조차도 없이 말이다. 또 부모 밑에서 자식이 계속 지내게 되면서 부모의 연금과 수입을 나누어 쓰게 된다. 그렇게 되면 부모는 노인이 되어 자신을 위해 쓸 돈이 줄게 되는 것이다. 책에서 강조하는 점은 노인 문제가 절대로 노인만의 문제로 해결할 수 없으며, 노후파산이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두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 점은 한국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문가들은 일본이 ‘노후파산’이라면 한국은 ‘노후지옥’까지 왔다고 경고한다.

신자유주의 정책, 고령화, 복지정책에 있어 한국은 일본과 비슷한 사회적 변동을 겪고 있다. 어쩌면 그 속도는 일본보다 더 빠를지도 모른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45.6%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OECD 평균이 12%인 것에 비하면 4배 가까이 되는 수준이다. 전체 국민의 소득 격차보다 노년층의 소득 격차가 더 심각한 수준이다. 또 2016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 2명 중 1명은 빈곤에 시달리고 10명 중 1명은 최근 1년간 자살을 생각한다고 한다.

대한민국 노인 자살률 또한 OECD 국가 중 1위다. 대한민국은 2050년이면 인구 10명 중 4명은 노인인구가 되는 사회가 된다. 우울한 지표가 늘어만 가지만 노인 복지 정책은 아직 제자리걸음이다. 이것이 한국 노인의 현실이고, 한국 가족이 직면한 문제다. 고령화된 가족과 사회 속에서 이 같은 현상을 이미 겪고 있는 일본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무겁다. 책에 담긴 우울하고 참담한 일본의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고, 그 원인과 해결방안을 찾아볼 때다.

유승진기자 ysj194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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