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누가 박정희 기념우표를 취소시켰나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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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21   |  발행일 2017-07-21 제23면   |  수정 2017-07-21
[조정래 칼럼] 누가 박정희 기념우표를 취소시켰나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이 우여곡절 끝에 무산됐다. 우정사업본부(이하 우본) 우표발행심의위원회는 지난 12일 우표 발행 재심의 회의를 열고 발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박정희 우표 발행은 박근혜정부 시절인 지난해 4월 우표발행심의위원회가 발행을 확정한 바 있다. 이 우표는 이미 디자인 도안의 마무리를 거쳐 오는 9월에 60만장이 발행될 예정이었다. 박정희 기념우표 발행을 반대하는 주장과 취소 요구는 발행 심의 당시부터 있어 왔지만, 우본은 최근까지 발행 강행 입장을 고수해 왔다. 우표 발행 재심의는 전례가 없는 일이고, 발행계획 취소는 예기치 못한 결과였다.

우본의 이 같은 결정은 간단치 않은 후폭풍을 몰고 왔다. 그 여진도 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좌파 진영은 당연한 귀결이라는 듯 표정관리에 들어갔고, 힘 없고 결집력 없는 우파들은 마치 각개 독립운동 하듯 규탄을 촉구하고 나섰다. 박정희 기념재단은 ‘대한민국, 아 슬프다…’는 글을 담은 광고를 일간지에 실었고, 남유진 구미시장은 우본 앞에서 취소를 반대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자칭타칭 혁명적 보수논객에서 최근 종편 앵커로 변신한 전원책 변호사의 클로징 멘트는 누리꾼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문재인정부에 묻고 싶다. 지난해 만장일치로 결정됐던 기념우표 발행을 취소하는 것이 정말 국민통합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사달의 본질은 우본의 심의와 재심의를 넘은 배후와 이면에 있다. 우본 우표발행심의위원회는 지난해 6월 전체 위원 9명의 만장일치 찬성으로 우표 발행을 결정했다. 불과 1년 뒤 재심의에서 반대 8명, 찬성 3명으로 결정이 번복됐다. 재심의에서 반대한 위원들이 지난해 심의에 참석했던 그 위원들인지는 알기 어렵고 또 그것이 논란의 중심도 아니다. 우표발행심의위원회 위원들의 결정을 비판한 하태경 바른정당 의원의 논거는 그래서 일정 부분만 옳다. ‘심의위원들의 마음이 바뀌어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기념우표를 취소하려고 했다면 애초 박근혜정부 아래서 해야 했다. 그러면 용기 있다고 박수받았을 것’이라는 지적은 우리 누구도 쉽사리 하기 힘든 과한 주문이다. 다만 ‘우본의 우정사업본부 심의위원들이 문재인정부를 반대세력 포용 못하는 치졸한 정부로 만들었다’는 설파는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삼척동자도 백번 수긍할 만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권의 정책과 흔적 지우기에 동원되는 거수기 논란은 반복된다.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을 경주시내 호텔에서 기습적으로 결정한 한수원 이사회도 다르지 않다. 비난의 화살은 통상 조준하게 되는 거수기들이 아니라 그들을 조정하는 ‘대형(大兄)’을 과녁으로 삼아야 마땅하다. 서슬퍼런 집권세력 앞에 서자면 완장의 붉은 색이 어른거리고 보이지 않는 손이 모골을 송연하게 하는데 그럼에도 외로이 의로움을 잃지 말라는 건 폭력이고 인권유린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완장의 겁박이 일상적으로 아무런 자의식 없이 자행되면서 민주와 법치의 근간을 예사로 훼손하는 행태다. 박정희 기념우표를 내든 내지 못하든 그것은 별개의 문제로 하자. 그러나 최소한 박정희 기념우표 발행이 여전히 찬반 논란을 초래하고 있고 애시당초에도 졸속 결정이었다는 판단을 하고 철회를 하려 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공론화 과정을 거쳐야 절차적 민주주의에도 맞다. 좌우 진영논리에 의한 졸속 결정과 졸속 번복이라면 악순환은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되고, 앞으로 그 어떤 대통령도 정치적 논란의 희생양이 돼 기념하기 어렵게 된다.

정치적 보복은 역사적 사실을 정치적 사건으로 비약하는 이러한 정치 과잉의 아집에서 싹트고 자라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공과 과가 분명하고, 정치적 논란은 있을지언정 후세대들에게 역사적으로 기념받지 못할 이유도 없다. 시인 출신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얼마 전 취임식에서 공무원들에게 “영혼 있는 공무원이 되어 달라"고 말해 주목을 끌었다. 아마도 집권세력들은 모르거나 모른 척하는 것 같다. 그들의 편협함과 용렬함이 대대 정권 영혼없는 공무원과 부역자를 양산하고 있음을. 제 눈의 들보를 보지 못하거나 외면한 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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