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군, 대구 혁신아이콘이 되다 .1] 대구의 신지형도를 그리는 달성

  • 임훈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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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20   |  발행일 2017-07-20 제13면   |  수정 2017-10-26
첨단 산업·교육·주거도시…주변부서 중심으로‘상전벽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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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달성군 유가면 양리 비슬산 대견봉에서 바라본 달성군 전경. 과거 논밭 일색이던 농업지역이 첨단산업단지와 주거지역으로 변모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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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테크노폴리스 주변 전경.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앞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돼 있다.

◆시리즈를 시작하며 =대구시 달성군의 변화가 눈부시다. 달성군은 1995년 경북도에서 대구시로 편입된 이래, 농촌지역에서 최첨단 산업·교육·주거 도시로 급성장했다. 군내 산업단지에는 첨단기술 기반 기업들이 연이어 입주하고 있으며,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와 국립대구과학관 등 교육시설은 대구·경북의 인재를 키우는 터전으로 자리잡고 있다. 또한 달성군 일원에는 대규모 주거단지까지 조성되면서 군 지역으로는 드물게 인구 30만 시대를 앞두고 있다. 유입 인구의 연령대도 낮아, 달성군은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젊은 도시로 탈바꿈할 전망이다. 이 밖에도 달성군은 농업과 교통 등 여러 측면에서 내실을 다지며 꾸준한 발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은 달성군과 공동으로 달성군의 변화상을 연재하는 ‘달성군, 대구의 혁신 아이콘이 되다’ 시리즈를 연재한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달성군의 혁신적 발전을 비롯해 군내 각 지역과 군민생활의 변화상을 세부적으로 살핀다. 시리즈 1편에서는 달성군의 산업과 도시개발 부문 변화를 다룬다. 

테크노폴리스·국가산업단지
좋은 일자리로 젊은층 유입
DGIST·국립대구과학관은
대구·경북 인재 육성의 산실

작년 도시철도 1·2호선 연장
대구교도소 이전땐 부지 개발
TP일원 대규모 주거지 계획
郡으론 드물게 인구 30만 눈앞


#1. 비슬산에서 변화를 가늠하다

달성군의 변화상을 살펴보기 위해 대구 제1호 관광지인 비슬산에 올랐다. 대구 남부권을 아우르는 비슬산에서는 달성군 중앙부 및 대구도심 일부와 낙동강 일원을 조망할 수 있다. 비슬산의 명소로 꼽히는 대견사 인근 대견봉(해발 1천35m)에서 내려다본 달성군의 풍광은 예전과 확연히 달랐다. 기암괴석과 초목이 어우러진 비슬산의 비경은 옛 모습 그대로이지만, 산 아래 펼쳐진 낙동강 유역의 너른 들은 그야말로 상전벽해를 이뤘다. 비슬산 서편 골짜기 짙은 녹음을 따라 시선을 아래로 옮기면 대구테크노폴리스 일반산업단지가 보인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논밭 일색이었던 달성군 유가·현풍면 일원은 산업·주거단지로 변해 있다. 고층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선 대구테크노폴리스 주변은, 매일 출퇴근 때마다 입주기업과 각 기업의 연구소를 오가는 차량으로 붐빈다.

시선을 왼쪽으로 돌려 더 먼 곳을 바라보면 대구테크노폴리스 너머 구지면 대구국가산업단지가 어렴풋이 보인다. 대구국가산업단지는 달성2차산업단지가 함께 어우러져 거대한 산업단지를 이루고 있다. 2020년 대구국가산업단지의 2단계 사업이 마무리되면 명실상부한 대구의 핵심 산업단지로 태어날 전망이다. 비슬산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대구도심과 가까운 다사읍의 성서5차첨단산업단지는 2012년 준공 전후를 기점으로 첨단 전기·전자 기업이 입주했으며, 대구의 산업지도를 바꾸고 있다. 논공읍 달성1차산업단지 또한 최근 수도권 기업들이 이전하는 등 내실을 다지고 외연을 넓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2. 대구 산업의 새로운 터전

달성군은 예로부터 대구 발전의 한 축을 담당했다. 전통적 농업사회 시절에도 낙동강 수운을 바탕으로 대구지역 상업 발전에 기여해 왔다. 달성군의 본격적인 산업화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대 달성군에 들어선 달성1차산업단지와 2곳의 농공단지가 ‘산업도시 달성군’의 시작을 알렸다.

1995년, 달성군이 대구시에 편입되면서부터 달성군 일원은 대구의 새로운 산업단지로 본격적인 주목을 받는다. 1990년대 중반, 당시 대구는 심각한 산업용지난을 겪고 있었다. 주요산업이던 섬유가 건재했고, 자동차와 기계공업 등 신산업이 급성장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산업용지 수요가 급증했다. 이러한 공장부지난은 지역기업의 성장을 가로막았고, 대구의 산업 발전은 정체 위기를 맞았다. 1981년, 대구시가 직할시로 승격하면서 편입한 달성군 성서지역에 공단이 들어섰지만, 급증하는 산업용지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었다.

이후 대구시의 산업용지 확보 정책은 발빠르게 추진됐지만, 시련의 연속이었다. 대구시는 1995년부터 달성군에 위천국가산업단지 조성을 추진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낙동강 하류 부산·경남 주민들이 수질오염 가능성을 제기하면서 새로운 산업단지가 무산되고 말았던 것이다. 1990년대 후반에도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국내 완성차 업체가 달성군에 자동차 공장을 지으려 했지만, IMF 경제위기와 대기업 구조조정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결국 백지화되고 만다.

하지만 대구에서 대규모 산업단지가 들어설 마지막 남은 땅은 사실상 달성군뿐이었다. 결국 지역경제 활성화와 산업경쟁력 확보를 위해 달성군에 대규모 산업단지가 조성되기 시작한다. 그 첫걸음은 유가·현풍면 일원의 대구테크노폴리스 일반산업단지다. 2002년부터 기본 구상과 계획 수립이 이뤄졌고, 현재 수많은 첨단기업들이 입주해 있거나 입주를 앞두고 있다. 2008년에는 구지면에 달성2차산업단지가 준공되면서 대구도심의 산업용지 부족난에 숨통을 틔워주었다. 다사읍 세천리 일원에 조성된 성서5차첨단산업단지 또한 대구지역 산업고도화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구지면 일원이 2009년 대구국가산업단지 지구 지정 승인을 받으면서 달성군은 명실상부한 산업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이 밖에도 구지면 구지농공단지와 옥포면 옥포농공단지는 달성군의 터줏대감 격인 산업단지로 제 역할을 하고 있다.



#3. 대구시민의 새로운 삶터

원래 달성군 지역은 예로부터 대구와 같은 생활권에 속해 있었다. 조선시대에도 대구가 ‘달성’이라는 별칭으로 불렸을 정도로 대구와 달성은 한 지역으로 인식됐다. 달성군은 1896년(고종 33) 13도제의 실시로 인해 대구에서 경북으로 소속이 바뀌었지만, 이후에도 대구 근교라는 지리적 특성상 대구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다시 대구의 일부가 된 지금의 달성군 또한 대구시민의 삶터로 각광받고 있다. 대구도심과 인접해 교통이 편리한 데다, 수많은 산업단지가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잇단 신규 주택단지 건설로 달성군 일원의 정주여건이 개선되고 있으며, 향후 철도·도로 등 교통망이 확충되면 인구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대구도심과 가까운 화원·다사읍을 비롯해 옥포공공주택지구의 경우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예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다. 대구도시철도 1·2호선이 달성군으로 들어오거나 연장되면서 기존 대구도심과 물리·시간적 거리가 줄었기 때문이다.

다사읍의 경우 그 변화상이 놀랍다. 수많은 아파트와 상업건물이 들어서 옛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구도시철도 2호선 다사역을 이용하면 20여분 만에 대구도심 한가운데인 반월당역에 도착할 수 있다. 화원읍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화원읍 역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서 활기찬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화원읍의 경우 대구 4차순환로 일부구간인 앞산터널로가 완공되면서 대구도심과 대구 동부권 및 경산권과 가까워졌다. 지난해에는 대구도시철도 1호선 화원 연장 구간이 개통되면서 다사읍에 이어 화원읍에서도 본격적인 도시철도 시대가 열렸다. 화원읍에 위치한 대구교도소 이전과 더불어 후적지 개발까지 논의되고 있어 추가적인 도시개발도 기대된다. 유가·현풍면 대구테크노폴리스 일원에도 대규모 주거단지가 들어서긴 마찬가지다. 대구시 달서구 대곡동과 대구테크노폴리스를 연결한 테크노폴리스로까지 2014년 준공되면서 달성군과 대구도심이 가까워졌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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