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책 100권 읽었지만 내용이 생각 안 나면 잘못된 독서”

  • 최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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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17 07:54  |  수정 2017-07-17 07:54  |  발행일 2017-07-17 제18면
■ 정약용에게 배우는 독서의 방법
① 정독-꼼꼼하고 자세하게 읽기
② 질서-생각하고 질문하며 기록
③ 초서-중요한 부문은 옮겨 적기
[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책 100권 읽었지만 내용이 생각 안 나면 잘못된 독서”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요즘은 책이 정말 흔한 시대입니다. 도서관에는 책이 켜켜이 쌓여 있고, 서점가에는 나날이 신간이 쏟아져 나옵니다. 아무리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는 사람도 이 세상의 책을 모두 읽기는 불가능한 시대입니다. 이 세상의 지식이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책이 많아진 것인지, 책이 많아져서 지식이 증가한 것인지, 그 앞뒤 관계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책이 엄청나게 많은 세상임은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걸까요? 요즘은 책을 읽는 데에도 속도와 양을 중요시하는 것 같습니다. 바쁜 현대 생활, 무엇이든 빠르고 정확하고 많은 일을 해야 하는 시대에 발맞추어, 독서도 몇 권이나 읽었는지 양을 중요하게 따지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세상에 알아야 할 정보는 넘쳐나고, 읽을거리의 증가 속도는 사람의 능력으로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세상이라서 그런지 되도록 많은 양의 독서를, 가능한 한 많은 권수의 책을 읽는 것을 권장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더욱이 여러 단체에서 제공하는 ‘○○ 추천도서’ 목록은 학생들에게 독서의 깊이보다는 양을 강요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합니다.

이런 우리의 독서 행태를 반성하게 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책을 많이 읽고, 많이 쓴 것으로 유명한 다산 정약용입니다. ‘정약용’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많습니다. 정조 임금, 수원화성, 거중기, 오랜 유배 생활, 다산초당, 천주교, 목민심서…. 그중에서 오늘 할 이야기는 정약용의 독서에 관한 내용입니다. 정약용은 뛰어난 재능으로 정조 임금의 총애를 받습니다. 그러다가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함으로 천주교 신자라는 누명을 써 오랜 유배 생활을 했습니다. 18년이라는 유배 생활 중에도 그는 늘 책을 가까이했습니다.

정약용은 책을 세 가지 방법으로 읽었다고 합니다. 바로 정독(精讀), 질서(疾書), 초서(書)입니다. 정독(精讀)은 책을 아주 꼼꼼하고 자세하게 읽는 방법입니다. 한 권의 책을 아주 꼼꼼하고 자세하게 읽어야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약용은 책의 내용을 완벽하게 이해한 후에 비로소 다른 책을 읽었습니다. 독서는 푹 젖어야 합니다. 한 권의 책을 깊게 읽어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옛말에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책이든 백번을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자신에게 들어온다는 뜻입니다. 책을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읽으면 자기 것으로 만들기 어렵습니다. 자신이 읽은 책의 목록이 쌓여가는 것에 만족을 느끼는 독서는 푹 젖는 독서가 아닙니다. 한 권을 읽더라도 천천히, 꼼꼼하게, 그 뜻을 되새기며 읽는 것이 정독의 방법입니다.

두 번째 독서 방법인 질서(疾書)는 메모하며 읽는 방법입니다. 책을 읽을 때 깨달은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빨리 메모하며 읽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고, 스스로 질문하고, 그것들을 기록하며 읽는 것이 질서의 방법입니다. 생각은 바람과 같아서 금방 사라지고 맙니다. 생각을 저장해 두는 유일한 방법은 기록을 해 두는 것입니다. 잘 다듬어지지 않은 글이라도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간단히 적어두면, 또 그것들이 쌓이면 지식을 정리하고 체계화할 수 있습니다. 질서의 습관은 책을 읽다가 잠깐이라도 스쳐 지나간 생각을 자신의 것으로 정리할 수 있고, 궁금한 것을 정확히 찾아내는 힘이 됩니다.

마지막 방법인 초서(書)는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들거나 중요한 부분이 나오면 그대로 옮겨 적는 것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정말 마음에 들어 감동적인 구절이 나올 수도 있고, 아주 중요한 내용이라서 꼭 기억해 두고 싶은 부분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런 내용들을 종이에 적어두면 책의 뜻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의 기준을 마련하고 비슷한 내용들을 구분하여 적어두면 흩어져 있던 지식의 알맹이들이 꿰어지게 됩니다. 갈래별로 꿰어진 생각은 자신의 지식 체계를 정교화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고, 나아가 글을 쓰고 책을 쓰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도 흩어져 있으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초서를 생활화하면 언젠가 자신이 책의 저자가 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은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500여 권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그 힘은 바로 세 가지 독서 방법인 정독, 질서, 초서에 있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책의 권수만 따지고 독서의 깊이를 따지지 않는 것은 잘못된 독서입니다. 책을 100권 읽었지만 그 내용은 어디로 갔는지 다 흩어져 버리고, 읽은 책의 목록만 남았다면 한 번쯤 반성해 보세요. 책을 읽을 때에 얼마나 꼼꼼하고 자세하게 읽었는지, 책에서 얻은 생각을 정리해 보았는지, 책을 읽을 때 느꼈던 그 생각들이 지금은 어디에 가 있는지. 한 권을 읽어도 꼼꼼하고 자세하고 천천히 읽는 독서가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시절입니다.

김대조<대구화원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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