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육식주의 vs 채식주의 - ‘국민음식헌장’을 만들자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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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23   |  발행일 2017-06-23 제41면   |  수정 2017-06-23
고기든 채소든 ‘과유불급’…무조건이 아닌 제대로 먹어야
20170623
무궁무진하게 양산되는 각종 먹거리. 저마다 특별한 맛을 앞세우며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지만 정작 그 음식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꼼꼼하게 체크하면서 식사를 하는 ‘힐링푸드족’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젠 전국민이 착한 ‘국민식단’에 대해 고민할 시점이다.

‘고기는 일절 안 먹고 채식만 하고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는가?’

요즘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다. 음식 관련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얼추 20년이 돼가고 식품 관련 이런저런 전문가를 숱하게 만나봤지만 그들의 생각 역시 가지각색이고 공통분모도 찾기 어렵다. 올챙이 음식기자 시절. 그때는 별스럽고 유명한 식당, 그다음에는 맛있는 식당을 주로 찾아다녔다. 요즘은 동선이 좀 달라졌다. 제대로 된 ‘힐링식당’을 중점적으로 찾아다닌다. 꿈의 레시피를 찾는 셰프보다 ‘꿈의 제철 로컬푸드’를 찾는 셰프를 더 중시하고 싶다. 이제 우리의 식당은 대박식당에서 벗어나 ‘힐링식당’으로 진화돼야 한다. 맞벌이 세상, 부엌이 죽고 다들 밖에서 식사를 하는 외식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 채식이냐 육식이냐!

채식과 육식. 보수와 진보 갈등보다 더 심한 것 같다. 타협하기 어려운 핫이슈가 됐다. ‘통합 암 치료 로드맵’의 저자인 부산대병원 통합의학과 김진목 교수는 “채식을 하든지 육식을 하든지 제대로 먹는다면 건강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런데 ‘제대로’란 대목에 딴죽을 걸고 싶다. 정말 제대로란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반문해 보고 싶다.


채식과 육식 식습관에 대한 날선 공방
“20년간 극단적 비건 생활이 몸 망쳤다”
“고기 먹기 시작하면서 문명 위기 초래”
‘채식의 배신’-‘육식의 종말’로 대립

대구 2만6천 식당…채식전문 10곳 미만
조미료와 설탕 등에 길들여진 고객 입맛
적잖은 제약조건과 경영난에 폐업 빈번
‘ 제대로 된 먹거리’ 국가적 고민 절실해



현재 우리의 식문화를 감안한다면 채식주의자는 좀 심하게 말해 ‘이기주의자’로 눈총 받는다. ‘채식한다’고 하면 쌍심지부터 켜고 달려드는 사람이 많다. 그걸 왜 하냐,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난다 등 온갖 회유와 협박을 일삼는다.

전문가도 채식파와 반채식파로 대립된다. 그걸 단적으로 알려주는 두 저서가 있다. ‘채식의 배신’을 쓴 리어 키스. 그녀는 “20년간 동물성 식품을 입에 전혀 대지 않는 극단적인 비건 생활을 실천하다가 몸을 망쳤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지금 육식으로 몸을 회복했단다. 이와 대척점에 있는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은 “현대 문명의 위기를 초래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인간의 식생활이고 특히 고기를 먹기 시작하면서 파생되기 시작한 문제가 여러 분야에 걸쳐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켰다”고 주장한다.

채식의 이면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도 하나씩 등장한다. 미국 카네기멜론대 연구진은 음식이 식탁 위에 오기까지 1㎉당 에너지와 물 소비량, 온실가스 배출량을 조사했다. 연구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밝혀낸다. 같은 양의 칼로리를 채소 중심 식단으로 채웠을 경우 육류가 포함된 평균적인 식단에 비해 에너지 소비량은 43% 증가, 물 소비량은 16% 증가, 온실가스 배출량은 11%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단다.

◆ 채식주의자의 이면

우리의 현실에서 만나는 채식담론에서도 모순적인 흐름이 발견된다. 암을 이겨낸 주인공의 성공담은 거의 ‘채식중심적’이다. 그런 흐름 때문에 우린 ‘채식=암 치유식’으로 인정한다. 그런데 숱한 암 주치의들의 주장은 이와 상충된다. 대부분의 암 주치의들은 항암치료 중에는 특히 고기와 생선 등 고단백식사를 강조한다. 허정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는 육식예찬자이기도 하다. 1980년대 엔도르핀 돌풍을 일으킨 이상구 박사는 요즘 강원도 속초에서 힐링캠프를 운영하고 있는데 예전과 달리 채식주의를 무조건 찬성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 대척점에 있는, 대구의료원에 있다가 서울로 올라가서 ‘현미채식운동가’로 변신한 의사 황성수씨는 김치까지 발암식품으로 규정할 정도의 반육식주의자다.

채식은 선택 방법에 따라 11단계로 나눌 수 있다. ‘세미채식(육류는 먹지 않고 조류나 해산물을 섭취)’ ‘페스코채식(조류를 포함한 육류를 먹지 않고 회 등 해산물은 섭취)’ ‘락토오보채식(조류를 포함한 육류와 해물을 먹지 않는 상태로 우유 등 유제품은 섭취)’ ‘비건채식(동물성 식품을 전혀 먹지 않음)’ ‘프루트채식(과일·곡물·잎사귀만 섭취)’ ‘생채식(채소를 요리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섭취)’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안재홍 전 대구녹색소비자연대 사무처장은 10년 전부터 채식을 실천했고 6년 전 제주도 애월 앞바다로 망명을 갔다. 현재 귤농사를 지으며 제주녹색당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는 그는 ‘비건(Vegan)’. 대구 중구 삼덕동에서 임재양 외과의원을 꾸려가는 임재양 원장도 채식주의자로 산다. 외식도 거의 안 하고 병원 옆 별채 식당에서 통밀빵, 하루분의 채식 식단 등을 짜고 관련 채소도 직접 기른다.

난 두 명의 식습관을 주시하고 있다. 그래서 수시로 이들의 체력과 건강 상태를 체크한다. 육식을 하던 사람이 채식만 하면 어떤 부작용이 생길까, 그게 너무 궁금했다. 솔직히 가끔 즐기는 나의 육식욕의 장점을 합리화하려는 저의도 깔려 있다. 둘에겐 채식으로 인한 부작용은 거의 없었다. 체질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아무튼 현재 이들에게 채식은 실보다 득이 많은 것이었다.

둘의 일상은 평소 엄격함과 엄정함이 있었다. 누구나 부러워할 수는 있어도 웬만한 용기로는 결코 채식을 실천할 수 없다. 삶에 대한 성찰과 안목, 일반 식당에서의 회식문화와도 일정 거리를 둘 수 있는 강단과 자신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채식은 단지 식습관의 문제가 아니다. 인생·세계관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 채식전문식당의 어려움

집에서 채식을 직접 챙겨 먹는다는 것, 직장인에겐 너무 어렵다. 자연 채식 전문식당에 의존해야 하는데 그런 곳을 발견하기가 대구 같은 곳에서는 무척 어렵다. 채식전문식당에 적잖은 제약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 ‘큰나무집밥’에서는 고기를 먹을 수 없다. 수행에 방해를 주는 식재료로 분류된 ‘오신채(五辛菜, 파·마늘·부추·달래·흥거)’를 뺀 채식위주 밥상이기 때문이다. 여사장 조갑연씨. 그녀는 “고기 없는 밥상이 좋아 보여도 식당 경영에는 치명적일 수 있다”고 고백했다. 고기를 찾는 단골 때문에 할 수 없이 축산물 대신 생선을 대체품으로 냈고 최근 전남 해안권의 명물인 민어구이를 별미로 내고 있다.

2013년 수성구 욱수동에서 드물게 채식 전문 밥집인 ‘이밥’을 오픈한 여사장 이명희씨. 그녀는 유기농 식재료를 직접 조달하고 양념류까지 직접 만들다 보니 남는 게 없었다. 설상가상 채식밥상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 못했다. 결국 2년을 버티다가 폐업하고 서울로 가버렸다.

채식전문점은 분명 매력적인 식당이다. 하지만 아직 지역에선 요원한 것 같다. 상당수 사람들은 화학조미료, 설탕 등이 가미된 자극적이고 맛있는 음식에 길들여져 있다. 현재 대구에는 각종 식당이 2만6천여개 포진해 있다. 이 중 고기를 전제로 하지 않는 채식전문점은 유기농뷔페 이플 등 10개 안 된다.

◆ 정부 차원의 국민음식헌장 만들자

지구가 태어나고부터 지금만큼 식품 종류가 무궁무진한 때는 없었던 것 같다. 대형마트에 전시된 각종 먹거리. 자기가 제일 착한 먹거리라고 고함친다. 그 뒷면에 적힌 정체불명의 화학첨가물들의 정체는 뭔가. 그 글자는 왜 그렇게 읽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가. 천연식품은 폭감, 가공식품은 폭증하고 있다.

배가 고파서 아사했던 시절이 불과 반세기 전이었는데 이젠 너무 포식해 각종 성인병에 걸려 병사할 운명이다. 마음의 평화, 안분자족, 인문학적 성찰 등을 운운하지만 제일 중요한 민주시민의 실천강령 1호는 이젠 ‘먹거리’다. 맛있는 게 아니라 잘 먹는 게 아니라 제대로 먹는 일이다. 이건 본인은 물론 가족, 지역사회, 멀게는 지구촌의 건강을 위해서다. 그게 안되면 모든 게 허사가 될 수 있다. 이젠 민주주의가 아니다. 안목 있는 사람들은 ‘식주주의(食主主義)’를 요구한다. 녹색당이 그런 흐름을 붙들고 있다.

제대로 된 음식이 전제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죽음도 없다. 음식과 건강의 상관관계. 가정의학자와 식품의학자, 임상영양사 등이 관심 가져야 할 국가적 핵심이슈다. 이 밖에 의사, 약선전문가, 자유치유 전문가, 암 극복 시민 등도 원탁회의에 나와야 한다. 요즘 백가쟁명식으로 터져나오는 종합편성TV 식품의학 관련 담론은 너무 주관적이고 상업적이다. 자가당착에 빠져 있다. 검증시스템은 작동하지 않는다. 이미 주요 이슈가 된 우유 유해론의 진실, 유전자변형식품의 진실, 식품첨가제의 진실, 육식과 채식의 장점과 단점에 대한 관련 정보 및 연구의 한계 등을 국민적 프로젝트를 통해 확인해봐야 된다.

갈수록 ‘가공식품천국’이 되고 있다. 불량식품도 핵폭탄·조류독감·슈퍼바이러스만큼 무섭다. 우린 현행 먹거리문화 속에서 자연사(自然死)할 가능성이 없다. 잘못된 식생활 때문일 수도 있다.

속히 국민교육헌장이 아니라 ‘국민음식헌장’이 제정돼야 한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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