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단상] 보수의 復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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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27   |  발행일 2017-05-27 제23면   |  수정 2017-05-27
[토요단상] 보수의 復活
노병수 대구 동구문화재단 대표

지난 2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첫 공판. 감색 정장차림의 그녀가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지 53일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만사가 귀찮은 걸까. 꾸미기가 싫었을까. 그보다는 여건이 따라주지 않아서였겠지만, 그녀는 새치머리에 민낯이었다. 큰 집게 핀으로 올림머리를 만들고, 똑딱이 핀으로 잔머리를 마무리했다. 긴장된 표정이었지만 비교적 담담한 모습으로 정면만 응시를 했다. 이날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단 여섯 마디. 시종 절제된 언어 사용을 했다. 어쨌거나 그녀의 처연(悽然)한 모습은 우리나라 보수정치의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번 대선의 득표 분포를 보면 대구경북만 색깔이 빨갛다. 경남도 빨간색이었지만, 부산과 울산을 합치면 파랗게 변한다. 이처럼 PK와 호남이 진보로 돌아선 지도를 보면 묘한 기시감(旣視感)이 든다. 바로 1987년이 그랬다. 6·29선언 당시 김영삼과 김대중의 표를 더하면 대구경북만 빼고 진보가 더 많았다. 그러나 진보는 그 찬스를 살리지 못했다. 양김의 단일화에 실패함으로써 정권을 노태우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노태우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3당 합당으로 아예 구도를 바꿔버렸다. 이후 30년 동안 우리나라 정치판은 사실상 보수의 독무대였다.

그 보수가 망했다고 다들 난리다. 신문의 칼럼마다 보수를 걱정하는 글로 넘쳐나고 있다. 보수논객 전원책은 보수가 망한 것도 모자라 “이제 우리나라에 보수는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망해버린 보수는 지리멸렬하기까지 하다. 처절한 자기반성도 없고 위기를 구할 리더십도 없으며 종내에는 품격 또한 없다. “바퀴벌레 같다”고 욕을 하면 “낮술을 드셨나” 하고 받아친다. 지난 정권이 워낙에 ‘저지레’를 많이 해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그가 움직일 때마다 올라간다. 국민들의 환호가 거의 집단적 유포리아(Euphoria) 수준이다. 새는 좌우 날개로 난다는 속담이 진보가 아닌 보수를 위해 쓰이는 날이 올 줄 예전엔 꿈엔들 짐작이나 했을까.

정말로 보수는 죽어버린 걸까. 다시 살아날 가망은 없는 것일까. 며칠 전 대구에 지역구를 둔 자유한국당 K의원이 말했다. 그는 사석(私席)에서 보수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첫째, 처절한 자기반성과 함께 친박들이 2선으로 물러나야 하고 둘째, 바른정당과 통합을 해서 다선(多選)의 리더십을 회복해야 하며 셋째, 젊은 보수들의 피를 수혈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의원총회에서 이 같은 주장을 발언하려고 했지만 주위에서 말려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소신은 확고하다. 망령(亡靈) 같은 박근혜 동정론에 매달려 있는 한 보수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보수 부활의 가장 큰 변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지금이라도 그녀가 ‘우주의 도움으로’ 명예를 회복하고 되살아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다시 보수의 구심점이 되고, 선거의 여왕으로 등장하지 않을까 희망을 한다. 거의 종교 수준이다. 많은 인파가 태극기를 들고, 성조기를 드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러나 에둘러 말하자면 그 기대는 난망(難望)에 가깝다. 오히려 그 기대가 보수의 부활을 가로막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태극기의 세(勢)가 커 보이지만 이미 역사의 퇴행(退行)이자 환각에 불과하며, 표로 환산하면 100만 표도 안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진보들만 환호하고 춤을 출 것이라는 것이다. 모름지기 부활은 죽은 생명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을 안 해도 답은 나와 있다. 우리나라 보수는 죽어야 부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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