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청보리

  • 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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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26   |  발행일 2017-05-26 제23면   |  수정 2017-05-30

대구수목원은 분수대 광장에 보리와 밀을 재배하고 있다. 분수대를 마주하고 서서 볼 때 왼쪽이 밀, 오른쪽은 보리다. 둘 다 푸른색을 띠고 있어 도시 사람들은 구별이 어렵다. 자세히 뜯어보면 보리는 밀보다 짧고 몸피가 약간 굵다. 이삭도 굵고 짧은 편이다. 낱알의 형태나 배치도 다르다. 이삭의 단면을 볼 때 보리는 두 쌍씩의 씨알 3개조 여섯 알이 원형으로 달려 있다. 밀은 네 알이 원형으로 줄기를 둘러싸고 있다. 낟알 끝에는 수염 같은 돌기가 달려 있는데 이를 까락(芒)이라 부른다. 까락은 보리와 밀 그리고 다른 알곡에도 달려 있다. 이것은 동물이 씨알을 먹는 것을 방해하고, 도깨비바늘처럼 이동을 위해 동물의 몸에 부착하는 역할을 한다. 후세를 널리 퍼지게 하는 수단인 것이다.

여러 까락 중 보리 까락이 가장 드세다. 뻣뻣하고 날카로우며 예리한 톱니가 달려 있다. 보리를 식량으로 하는데 까락은 골칫거리다. 보리를 재배해 본 사람은 안다. 보리를 벨 때 까락이 얼굴과 목·팔뚝을 얼마나 괴롭히는지. 타작을 할 때는 더 심하다. 입에라도 들어가면 아주 곤란하다. 이것을 빼내려고 혀를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점점 더 안쪽으로 들어간다. 수확과 타작이 기계화된 요즘에도 보리는 기피 대상이다. 까락이 워낙 억세서 보리를 수확한 콤바인은 분해해서 그것을 다 제거해야 계속 사용할 수 있다.

청보리는 보리가 익기 전 녹색을 띠고 있을 때를 말한다. 씨알은 부풀어 통통하지만 익지 않은 상태. 먹을 수는 있지만 덜 익은 것이라서 만족도는 매우 낮다. 보릿고개는 양식이 모두 떨어졌을 때부터 청보리 상태가 될 때까지, 이 땅의 평민들이 1년 중 가장 배고팠던 시기를 말한다.

전북 고창, 제주 서귀포, 경기 오산시 등 전국 여러 곳에서 청보리를 주제로 한 축제가 열리고 있다. 상주시 청리면에서는 26일과 27일 청보리축제가 열린다. 상주 청보리축제는 청리면 청상리에 심어 놓은 30㏊의 밀밭이 주무대다. 약간 경사진 들판에 펼쳐진 밀밭은 그 자체만으로도 장관이다. 이곳에서 청보리축제를 한다. 상주 청보리축제의 청보리는 파란 보리가 아니다. 청리면의 푸를 청(靑)자를 써서 ‘푸르고 보배로운 마을(靑寶里) 축제’다. 모처럼 끝없이 펼쳐진 밀밭을 풍물패들과 함께 걸어보고, 지난해 이곳에서 수확한 밀로 뺀 국수와 전을 맛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듯하다.

이하수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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