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과지급 기초연금 환수 노인 생계 곤란…여든에 일 나가기도

  • 최보규
  • |
  • 입력 2017-05-25 07:22  |  수정 2017-05-25 08:41  |  발행일 2017-05-25 제6면
환수 2년차…해당 어르신들 삶은?
20170525
기초연금 환급 대상에 오른 퇴직공무원 정윤근씨(가명)가 최근 대구지역 한 호텔에서 주차안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이날 정씨는 8시간 근무하고 4만원을 받았다. 그는 2015년 가을 구청으로부터 기초연금이 과오지급됐으니 150여만원을 환수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2015년 불거진 기초연금 환수사태로 인해 일부 노인들이 여전히 고통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정부 측의 실수로 일부 퇴직공무원에게 기초연금이 초과지급됐다. 정부는 초과된 금액을 갚으라고 해당 노인에게 통보했다. 이로 인해 노인들은 순식간에 체납자가 됐다. 그중 일부는 일정한 생계수단이 없어 여전히 골머리를 앓고 있다. 노후를 대비하지 못한 노인들의 삶에 안정을 주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도리어 노인의 삶을 옥죄게 한 셈이다.

기초연금 환수사태가 빚어진 지 2년 가까운 시간. 영남일보는 이 사태로 인해 아직까지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인들의 삶을 들여다봤다.

◆“기초연금 환수로 병원비도 어림없어”…여든 넘어 재취업 선택한 어르신

한승경씨(81·가명)는 여든이 된 지난해 다시 일터로 나가기 시작했다. 환경미화 공무원을 정년퇴직한 지 약 30년 만이다.

팔순의 한씨가 재취업을 결심한 근본적인 배경은 2015년 가을 구청으로부터 받은 한 통의 전화 때문이다. 구청 직원은 한씨에게 약 1년간 기초연금이 초과지급됐으니 이를 갚는 대신 기초연금을 삭감해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한씨의 경우 2014년 법 개정에 따라 기초연금의 50%만 받을 수 있지만 1년 넘게 100% 그대로 지급된 게 발단이었다.


기한내 못 갚으면 압류 조치
연금액도 줄어들어 이중고
삭감된 금액에 재취업 선택

“노인 기초 생활 보장제도가
삶에 더 큰 짐 지우고 있어”


매달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이었던 기초연금은 4분의 1로 토막 났다. 이전까지만 해도 매달 16만원씩 나왔지만 한순간 손에 쥐이는 돈은 4만원으로 줄었다. 이 돈으로는 한 달에 10만원 가까이 나오는 병원비도 대기 힘들었다. 기초연금은 결국 한씨 부부가 다시 일터로 나갈 수밖에 없도록 만든 족쇄가 됐다.

“정부 잘못으로 돈을 지급해 놓고 이제 와서 돈을 돌려달라는 게 어디있습니까.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법 바뀐 걸 어떻게 다 알겠어요. 돈이 들어오니까 ‘아, 이게 내 몫인가 보다’ 하는 거지. 국가가 노인을 빚쟁이로 만들고 아무 말 없다가 갑자기 생활도 안 될 만큼만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게 참 답답할 노릇이죠.”

◆신용불량자로 살아온 30여년… 기초연금 환수로 이중고

최근 만난 정윤근씨(70·대구 중구·가명)는 인터뷰 도중 한숨을 내쉬었다. 경찰 공무원을 했던 정씨는 정년퇴직을 몇 해 안 남긴 1998년 큰 위기를 맞았다. 지인 보증을 선 상태에서 IMF 외환위기가 터지자 하루아침에 큰 빚을 떠안게 된 것. 그는 부채를 갚기 위해 결국 명예퇴직을 택했다.

1억원 조금 넘는 퇴직금으로 급한 빚부터 갚았지만 채무는 여전히 남았다. 하지만 신용불량자라는 딱지 때문에 정식으로 취업하기 힘들었다. 알음알음 구한 단기직장으로 하루 5만~10만원을 벌지만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몰라 늘 불안하다. 정씨의 아내는 몸이 불편해 일도 할 수 없는 처지다.

“예전에는 공무원들이 신용이 좋으니까 지인 보증을 많이 서 줬어요. 갑자기 외환위기가 터지고 빚이 산더미처럼 있는데 별다른 방법이 있습니까. 퇴직금으로 우선 급한 것부터 메워야 했죠. 한 20년 갚고 나니 이제 겨우 (빚 갚는 일이) 끝이 보이려고 하네요.”

퇴직과 동시에 찾아온 힘든 삶을 보내는 동안 2012년 7월부터 매달 20여만원씩 나오던 기초연금은 정씨 부부의 생활에 큰 보탬이 됐다. 한때는 아내의 몫까지 더해 매달 32만원을 받았다. 밖에서 일해 번 돈으로 빚을 갚고, 기초연금으로 식비 등 생활비를 충당했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매일 걱정 속에 살 정도는 아니었다. 이랬던 정씨에게 2015년 가을 위기가 찾아왔다. 구청으로부터 2014년 7월부터 1년여간 기초연금이 과오지급됐으니 150여만원을 환수해야 된다는 통보를 받은 것. 50%만 지급돼야 할 기초연금이 100%씩 들어온 탓이었다. 그때부터 들어온 기초연금은 매달 5만원가량. 정씨의 부인은 개정법에 따라 수급대상에서 제외돼 단 한 푼도 받지 못한다.

“그나마 매달 나오던 기초연금으로 쌀도 사먹고 병원에도 갔는데 이제는 그것마저도 버겁습니다. 복지라는 것은 지금 당장 힘들게 사는 사람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 게 아닙니까. 처음부터 금액을 딱 맞춰 줬으면 갑자기 힘들어지는 일은 없었을 텐데…. 노인기초 생활을 보장해 주겠다며 정부가 시작한 제도가 내 삶에 더 큰 짐을 지우고 있습니다.”

◆갚지 않으면 지방세 체납 절차 밟게 돼…“어르신들 사정 뻔한데”

정부의 착오로 잘못 지급한 기초연금이지만 정해진 기한 내 갚지 않을 때엔 해당 노인들은 지방세체납과 같은 재산압류 등의 행정절차를 밟게 된다. 이에 지자체 측은 최대한 환수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노인들의 사정이 뻔하다 보니 돈을 달라고 말하는 담당 공무원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

한 구청 관계자는 “어르신들의 생계가 왔다 갔다 하는 문제라는 걸 왜 모르겠나. 힘든 사정을 말씀하시면 듣는 우리도 가슴이 미어진다. 어떤 분은 매달 5천원씩이라도 갚겠다며 주시는데 마음이 정말 안 좋다”고 말했다.

정부의 갑작스러운 환수조치로 자녀들도 부담을 느끼는 건 마찬가지다. 280만원가량 환수 통보를 받은 전직 공무원 P씨의 자녀 이모씨는 “정부의 실수인데 만회는 왜 국민이 해야 하나. 결국 정부가 만든 빚을 노인과 그 자식들한테 지라고 하는 것 아니냐. 처음부터 제대로 줬으면 뒤통수 맞는 일은 막을 수 있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지난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들은 노인연금 확대방안을 발표하고 나섰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소득하위 70%에 대해 30만원까지 단계적 인상을,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하위 70%에 월 30만원씩 지급을 약속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소득하위 50%의 경우 월 30만원까지 올리고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소득하위 70%에게 기초연금을 주되 하위 50%의 경우 차등적으로 연금액을 인상하겠다는 방안을 밝혔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모든 노인에게 월 30만원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글·사진=최보규기자 choi@yeongnam.com

■ 기초연금 과오지급 환수 현황
▲대구
총 과오지급액 약 39억4천만원
지난 2월 말까지 환수액 약 6억3천만원
환수율 16.2%
▲경북
총 과오지급액 약 52억원
지난 2월 말까지 환수액 약 20억원
환수율 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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