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칼럼] 換局(환국)과 적폐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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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23   |  발행일 2017-05-23 제31면   |  수정 2017-05-23
[CEO 칼럼] 換局(환국)과 적폐청산
박봉규 (서울테크노파크 원장)

정치인으로서 숙종은 국면전환의 명수였다. 정권을 담당하고 있는 당파의 힘이 지나치게 커지고 자신의 위상이 흔들린다고 판단될 때마다 임금의 고유권한인 인사권을 활용해 인위적으로 정권을 바꾸었다. 소위 환국(換局)이다. 재위기간 정권을 남인에서 서인으로, 서인에서 남인으로, 다시 남인에서 서인으로 교체하기를 반복하였다.

이러한 환국정치를 통해 숙종은 임금으로서의 권한을 강화할 수 있었다. 왕의 지지가 철회되는 순간 몰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어느 당파라도 군주의 눈치를 살피며 충성을 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폐해는 너무나 컸다. 초기의 당쟁이 국가운영의 방향이나 정치적 이념을 둘러싼 싸움이었다면, 이제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정권을 잡고 상대를 파멸로 내몰지 않으면 내가 죽는 상황이 되고 만 것이다. 당연히 권모술수가 판을 쳤다. 여자의 질투라는 주제로 사극의 단골소재가 되는 장희빈과 인현왕후도 이러한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기파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이용된 희생들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당대의 숱한 명망가들이 단지 반대파라는 이유로 죽음으로 내몰렸다. 정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백성의 삶은 나날이 어려워졌고 조선은 세계사의 흐름에서도 고립되어 갔다.

10년 보수정권이 물러나고 진보적 정책을 앞세운 정권이 출발했다. 국민이 선택한 환국이라 할 것이다. 다만 옛날의 경우와는 달리 환국을 단행한 국민이 대통령에게 정치의 구체적 내용을 위임한 것이 그 차이다. 곧바로 공약한 적폐청산이 시작되었다. 과거에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표현만 달리했을 뿐 역사 바로 세우기나 과거사 정리라는 이름으로 전임 정권에 대한 정리와 단죄가 있었기에 우리에게 결코 낯선 일은 아니다. 과거 정권이 추진했던 정책이나 실정을 표로 심판한 것이 정권교체이니만큼 어느 정도는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청산의 내용이나 추진과정에서 유념해야 할 것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그 대상은 잘못된 정책이나 제도여야지 사람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면 자칫 부작용을 양산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처벌이 필요하고 잘못된 제도나 정책도 고쳐야 한다. 그러나 인적청산은 순수한 뜻으로 시작한 경우에도 당쟁의 사례에서 보듯이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쉬 변질되기 쉽고 증폭되기 마련이다. 적폐청산의 기본방향은 과거를 거울로 삼아 미래를 향한 새로운 주춧돌을 놓는 제도개혁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5년이라는 짧은 임기를 감안할 때 과거청산에 시간과 정력을 쏟는 사이 국민들의 삶이 뒷전으로 밀려날 수도 있다. 정권교체를 선택한 국민들이 지금 절실하게 원하는 것은 정치적 이슈가 아니라 내 삶의 변화이다. 이념적 편 가르기의 확대가 아니라 생활개혁이다. 일자리 만들기요, 민생의 안정이며 복지의 확충이다. 거창한 구호는 넘쳐 나는데 내 삶의 개선은 피부로 느끼지 못하면 정권교체의 기반이 된 촛불민심은 언제든지 그 지지를 철회할 것이요, 민심의 지지를 잃는 순간 개혁도 탄력을 잃는다.

동시에 새 정부는 과감한 개혁과 대통합의 단추를 동시에 끼워야 하는 모순된 방정식을 지혜롭게 풀어야 한다. 마오쩌둥으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정치적 핍박과 박해를 받은 후 재기에 성공한 덩샤오핑은 당신을 핍박한 자들에게 복수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건의에 대해 “현재와 과거가 싸우면 우리의 미래가 죽는다”고 말했다. 미래를 위한 그의 결단과 혜안이 오늘의 중국을 만들었다. 환국 과정에서 승리한 당파가 지난날의 원한을 잊고 한 번 크게 상대를 안아주었다면 조선후기의 우리 역사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비록 여당이라고는 하나 야당의 협조 없이는 국정운영이 어려운 지금의 상황에서는 더욱 필요한 일이다. 박봉규 (서울테크노파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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