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포항물회 이야기-간월도횟집 김헌찬·김준식 부부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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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31   |  발행일 2017-03-31 제41면   |  수정 2017-03-31
“포항물회, 제대로 맛보려면 고추장에 비벼 맹물을 부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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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고추장에서 비롯된 진미. 그것에 걸맞은 광어와 도다리가 얹히고, 입맛에 맞게 적당한 맹물을 넣어 가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맛의 스펙트럼을 찾아가는 것. 그게 포항물회의 특색 중 하나다.

대낮 기온이 20℃에 육박. 미식가는 벌써 하절기를 예감하곤 단번에 물회를 떠올린다. 물회는 대한민국 선원에겐 부적 같은 먹거리다. 식당밥에서 멀 수밖에 없는 그들. 물회는 망망대해 외딴 선상에서 손쉽게 요리해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였다. 그냥 생선·고추장·생수만 있으면 끝. 물회와 코드가 맞는 메뉴는 국밥, 비빔밥, 회국수, 냉면 등일 것 같다.

전국에 별별 물회가 널렸다. 그 별스러움이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다. 더 많이 팔기 위한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다들 전국 여러 스타일의 물회를 골고루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모두 자기 고장의 물회가 물회의 전형인 줄 착각한다. 인지도로 보면 단연 ‘포항물회’가 좌장격. 한국 물회의 대명사를 ‘포항물회’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포항 횟집은 모두 연중무휴 물회를 특미로 판다.

◆팔도 물회 이야기

물회는 역시 동해가 서·남해를 압도한다. 크게 분류하면 물회는 포항권, 울진·속초권, 울릉권, 제주도권, 장흥권 등 5대 권역으로 나뉜다. 울진·속초권 물회는 오징어, 울릉도는 꽁치, 식초와 된장이 주재료로 등장한 제주도와 장흥권은 자리물회와 된장물회가 활성화돼 있다.


회를 고추장에 비비고 물 부어 후루룩
선원들의 선상 간편식서 비롯된 물회
제주도와 장흥권은 된장을 주로 사용

첫 포항물회식당은 1967년 ‘영남물회’
뱃사람인 남편 통해 알게 된 것이 계기
최근 환호동 일대‘설머리 물회지구’조성

북부시장엔 터줏대감 격인 간월도 횟집
신선한 생선회·2년 숙성 고추장이 기본
새콤달콤 육수보다 재료 본연의 맛 충실



봄에서 여름으로 건너갈 때 울릉도와 제주도 마라도 인근에선 꽁치와 자리돔이 많이 잡힌다. 울릉도는 꽁치를 특별하게 대접한다. 4월부터 물이 오르는 제철 꽁치를 손질해 냉동해두고 두고두고 먹는다. 심지어 꽁치살에 밀가루를 섞어 꽁치미역국으로 끓여먹기도 한다.

제주 자리물회는 오직 자리돔만 사용한다. 자리돔은 까만 도미의 일종으로 5~8월에 주로 잡힌다. 찬물에 고추장과 된장을 풀고 반드시 식초를 넣어 간을 맞춘다. 그 어떤 지방의 물회보다도 간이 세다. 웬만한 횟집에는 반드시 식초통이 비치돼 있다.

자리물회와 사촌 간은 전남 장흥군의 명물인 ‘된장물회’. 원래 된장물회는 며칠씩 고기잡이를 나간 어부들이 시어진 김치류에 생선과 된장을 섞어 먹은 데서 유래했다. 지난해 장흥문화원 위종만 사무국장과 군청 바로 근처에 있는 ‘싱싱횟집’에서 된장물회를 먹었다. 열무김치가 주재료로 등장한다. 된장, 양파, 풋고추, 마늘, 매실 진액 등을 넣고 막걸리식초 등과 버무려 낸다. 회진면에서 3분 정도 차로 달리면 진목리 ‘삭금마을’이 나타난다. 삭금마을이야말로 장흥 된장물회의 출발지다. 회진면 회진리에 20여년 역사의 ‘우리횟집’이 있다. 된장물회 원조식당인데 2년전 작고한 김실녀 할머니가 그 음식을 장흥 전역으로 퍼트렸다. 여름엔 제철인 갯장어(하모)가 된장물회의 으뜸 재료로 사랑을 받는다. 진목리 ‘용궁횟집’은 연안 갯벌에 사는 쑤기미를 주재료로 해서 된장물회를 낸다.

◆포항물회 스토리

“어느 포항물회가 원조지?”

포항 가서 절대 그런 질문 하지 마라. 우문 중 우문이다. 모두 원조고 맛의 질감도 조금씩 다르다. 우열이 아니라 차이밖에 없다.

포항물회를 전국구로 만든 건 유명 TV 프로그램. 1박2일·생활의 달인·백종원 3대천왕 등이 환여식당, 마라도회식당, 새포항물회 등을 줄서는 물횟집으로 만들어버렸다. 전국에서 찾아온 탐방객 때문에 이들 식당은 언젠가부터 ‘관광식당’으로 내몰린 것도 사실이다. 이 세 식당이 포항물회를 독점할 수도 없는 일. 토박이들은 저마다 뒷골목에 박혀 있는 단골 물횟집을 제일이라고 고집한다.

물회의 첫 출발은 선상. 선원들은 이런저런 잡어 등을 막회 형식으로 썰어 ‘상비약’ 같았던 초고추장에 비며 먹었다. 더 빨리 먹으려고 물을 넣어 후루룩 마시듯 들이켰다. 그게 지금도 변하지 않은 포항물회의 기본이다.

영일대해수욕장 근처에 포항물횟집이 30여곳 모여있다. 그 때문에 환호동 일대는 최근 ‘설머리 물회지구’로 태어난다. 설머리는 영일대해수욕장 맨 끝 해안마을. 이 밖에 영일대북부시장, 구룡포항, 죽도시장 등도 물회권이다. 죽도시장은 ‘관광객 천지’라서 토박이들은 상대적으로 잘 가지 않는다.

포항물회를 전국에 알린 식당주는 누굴까.

1960년대 최초로 포항 육거리에서 문을 연 ‘영남물회’의 허복수 할매. 자타공인 포항물회식당의 원조로 불린다. 1991년 동아일보 김봉호 편집위원이 그 할매를 취재했다. 그 기사에는 61년이 개업 연도로 소개됐지만 실은 사업자등록증을 낸 건 67년이다. 할매는 뱃사람인 남편 때문에 물회를 알게 됐다. 훗날 남편 사업이 망하자 물횟집을 열게 된다. 물회 제조법은 이후 김태식·전경화 부부에게 이어진다.

◆물회 아저씨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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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직종을 전전하다 10여년전 포항물회를 통해 자신의 천직을 발견하게 된 김헌찬 사장.

지난주 화요일. 북부시장의 터줏대감이나 마찬가지인 간월도 횟집 김헌찬 내외는 쉬는 날이었다. 하지만 기자가 취재를 간다고 하자 시간을 내주었다. 북부시장 내에는 간월도 말고도 호수, 대신, 경아, 오대양, 특미, 감포 등 물회 취급 횟집이 여럿 모여 있다.

물 마를 날이 없는 그의 손은 너무나 고단해 보였다. 그게 횟집 주인의 운명이다. 고기는 그가 장만하고 한 살 아래인 충청도 보령시 바닷가 출신인 아내(김준식)는 고추장과 밑반찬류를 담당한다.

“물회용 생선도 두 종류가 있어요. 그물바리와 낚시바리가 있는데 덜 상한 낚시바리가 훨씬 더 비싸죠. 비싼 걸 사용해야 되는데 가격 때문에 그렇지 못한 게 현실입니다.”

포항 송도수협활어위판장에선 오전 5시30분부터 그물바리, 오전 11시부터는 낚시바리를 경매한다.

그는 지금 이 횟집을 오픈하기 전까지 여러 직종을 전전했다. 대구시 북구 침산동의 주물공장에서 4년, 포항시 기계면 고향에서는 자전거 수리점, 다시 포항 시내로 나와 건설현장에서 철물을 만진다. 어느날 20층에서 추락해 중상을 당한다. 재택 물리치료 등 3년간 암흑 같은 시간을 보낸다. 아내는 죽도시장에서 양장점을 꾸려갔다. 죽도시장의 텃세가 너무 세 북부시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현재 식당 자리에서 25년간 세탁소를 운영하다가 늦깎이로 횟집을 차리게 된다. 평소 생선 손질은 누구 못지않게 잘했다. 물리치료를 할 때 낚시가 주된 소일거리였다. 고향 근처 저수지에서 잡아 온 민물생선을 직접 손질했다. 아내는 초피 가루를 넣고 매운탕을 끓였다. 아내의 손맛도 횟집으로 그대로 옮겨온다.

8℃에서 사는 참가자미, 14℃에 맞춰야 잘 사는 우럭, 광어 등 양식 어종의 생리부터 습득해나갔다. 수족관 설치비만 650만원. 하지만 교과서적 지식만으로 고기를 제대로 다스릴 수 없었다. 많이 죽어나갔다. 그물바리와 낚시바리 생선의 생존 온도가 제각각이란 사실도 나중에 알았다.

좋은 물회의 출발이 좋은 생선일 수밖에. 일반 회와 달리 물회용 회는 그 육질이 집집마다 들쭉날쭉하다. 그걸 손님이 정확하게 감지할 수 없다. 비싼 낚시바리를 정상대로 사용하면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참고로 30여년 역사의 대구시 동구 신천4동 포항물회의 경우 자연산 세코시 도다리물회가 2만7천원. 상대적으로 저렴한 양식이나 그물바리를 뒤섞고, 심지어 흠집이 있어 횟감을 미리 썰어 정상 생선과 섞은 뒤 자극적인 육수까지 부어놓으면 생선 선도는 도저히 감지할 수 없다. 싼 게 비지떡일 수밖에.

2000년쯤 포항에도 새콤달콤한 육수를 앞세운 물회가 등장한다. 관광객 탓이다. 하지만 토박이는 육수 없는 걸 선호한다. 마니아일수록 해삼, 멍게, 해초류 등 요즘 유행하는 복잡하고 화려한 버전도 멀리한다. 새콤달콤한 육수는 매실 진액, 설탕, 물 등에 배와 사과, 양파, 식초 등으로 만든다. 관광객 때문에 영일대해수욕장권에선 육수와 맹물을 동시에 내놓고 골라 먹게 한다. 하지만 본토 물횟집은 육수 자체가 없다. 포항과 달리 서울로 올라간 포항물회는 거의 새콤달콤한 육수형 물회로 변해버렸다.

담백한 광어보다 고소한 맛이 더 짙은 도다리가 물횟감으로 제격이다. 물회의 맛은 거의 고추장 맛이다. 그래서 이 집은 보리쌀, 찹쌀, 엿기름 등이 들어간 2년 정도 숙성된 집표 고추장을 고집한다. 옥상에 고추장 항아리가 15개 있다. 김가루, 깨소금, 쪽파, 오이·배채, 다진 마늘, 참기름 등이 기본 재료다. 참기름은 매일 짠다. 김가루도 생김을 직접 구운 것만 사용한다.

“공장표 고추장은 분명 맛을 가로막죠. 수제보다 뒷맛이 개운하지 않고 맛도 얇아요. 많은 분이 왜 물회에 배채가 들어가는지 궁금해하더군요. 무채가 들어가면 잘 넘어가지 않고 풍미도 덜해집니다.”

시식을 했다. 물회를 먹기 전에 1분 정도 잘 비벼준다. 상태를 봐가면서 물을 조금씩 부어준다. 장모가 보내온 까나리액젓으로 만든 깍두기가 특히 별미 반찬이다. 기존 물미역보다 떫은맛이 덜한 ‘쫄쫄이 미역’. 이게 고추장으로 조금 얼얼해진 입안을 중화시켜준다.

물회는 장만하는 식당주보다 먹는 손님에 의해 맛이 더 좌우되는 것 같다. 아무튼 토박이 스타일의 물회를 보고 싶다면 북부시장권으로 가보시라. 북구 대신동 63-5. (054)255-3612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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