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그 재판을 국민참여재판으로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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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9   |  발행일 2017-03-29 제30면   |  수정 2017-03-29
일반인의 눈높이로 하는 국민참여재판의 장점은 자세한 증거와 쉬운 설명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을 참여재판으로 하면 어떨까
[수요칼럼] 그 재판을 국민참여재판으로 한다면
정혜진 (국선전담변호사)

국선변호인에게 국민참여재판은 대체로 부담스럽다. 일반인인 배심원을 상대로 설득을 해야 하니 법률가들이 다 아는 용어를 쉽게 풀어 설명해야 하고, 구술 변론을 위해 일반 재판과는 달리 프레젠테이션 자료도 필수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또 증거조사 도중 벌어질 수 있는 예기치 못한 불리한 상황에 대한 대비도 예상해야 해서 일반 재판 준비 때보다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무죄 받을 가능성이 있는 사건이면 고생해도 보람이라도 있지, 유죄가 거의 확실하고 배심원의 동정심에 호소할 만한 가슴 아픈 사연 하나 없으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피고인의 주장을 따라 스스로 생각해도 앞뒤가 안 맞는 논리로 배심원들 앞에서 구두 변론하다보면 국선변호인이 잘못한 것이 없는 데도 괜히 부끄러운 마음까지 들기도 한다.

그런데 유죄 결론이 거의 확실한 사건을 참여재판으로 하면서 ‘내심’ 좋을 때도 있으니, 상식적인 말로 피고인이 설득이 안 되는 그런 경우다. 이런 증거가 있고 저런 증거가 있어서 당신 말이 받아들여지기 어렵다고 찬찬히 설명해도 자기 입장만 이야기하는 그런 사람에겐 참여재판이 오히려 해결책이다.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이니 하는 대의 때문이 아니다. 피고인이 재판 과정을 통해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분명히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일반 재판에서는 법정에서 증거 조사를 자세히 할 수 없다. 증인에게 묻고 답하는 과정을 통해 진실을 밝히는 증인 신문은 법정에서 이뤄지지만, 서증(서류로 된 증거)은 법정에서 제시되지 않고 판사가 야근하며 본다. 사건이 미어터져서 피고인이 출석한 법정에서 일일이 다 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재판받는 사람은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잘못한 게 없다고 하면 높은 형을 선고받을까봐 겉으로는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라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증인이 과장해서 말하고 있는 거야, 나는 정말 억울해’라고 생각하는 피고인이 많다. 피고인의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아는 나는 최후변론에서 “피고인이 이 사건 범죄를 깊이 반성하고 있으니 선처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하면서도 ‘판사님, 이런 놈은 정말 엄벌에 처해야 합니다’라는 말이 말풍선으로 그려질 때도 있다. 그런데 참여재판에서는 피고인이 잘못한 것에 대해 하나부터 열까지 자세히 제시하며 증거 조사를 하니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모를 수가 없다.

게다가 수사할 때는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하던 검사가 참여재판에서는 배심원에게 호소하기 위해 누구나 알아듣기 쉬운 말로 “법에는 이렇게 돼 있습니다, 피고인의 죄는 이런 겁니다”라고 차근차근 설명해주니 피고인도 ‘아 그래서 내 행동이 죄가 되는구나’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재판 준비 과정 내내 억울하다는 이야기만 하던 피고인이 최후변론에서는 “이제야 제가 뭘 잘못했는지 확실히 알았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형사법정에 피고인으로 서는 사건을 참여재판으로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10월 최순실 관련 첫 사과 발표에서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고 변명하더니, 신년 간담회에서는 뇌물죄 혐의에 대해 “완전히 나를 엮은 것”이라고 부정하고, 구속영장 청구 소식에는 “매우 억울하고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하는 걸 보니 처음부터 지금까지 본인이 뭘 잘못했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아서다.

물론 참여재판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참여재판은 대개 하루, 길어도 3일인데 이 사건은 증거 조사가 방대해서 그렇게 빨리 끝낼 수가 없을 것이다. 사건에 대해 미리 알고 있어 편견을 가질 우려가 있으면 배심원으로 적절하지 않은데 우리 국민 모두가 사건에 대해 어느 정도는 다 알고 있어서 적절한 배심원을 찾기도 어렵다. 무엇보다 참여재판은 피고인이 신청해야만 할 수 있는데, 한때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가 일반 국민의 눈으로 재판받겠다고 할 그런 위인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 글에서나마 상상해 본다. 상상은 자유니까. 정혜진 (국선전담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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