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렬의 미·인·만·세] 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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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9   |  발행일 2017-03-29 제30면   |  수정 2017-05-25
20170329
현대미술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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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샹의 샘

1917년 4월10일, 뉴욕의 한 갤러리에서 미술사상 가장 센세이셔널한 반역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참가비만 내면 누구나 전시할 수 있는 젊고 패기만만한 작가들의 전시회인 ‘독립미술가’전에서였다. 반역의 주인공은 뒤샹이었다. 그는 기성품인 남성용 소변기에 ‘샘(Fountain)’이란 제목을 붙이고 출품했다. 그가 선택한 레디메이드, 즉 기성품에 쓴 ‘R MUTT’란 사인도 뉴욕 변기제조업자인 리처드 머트라는 이름을 빌려 썼다. 뒤샹은 기성품에 서명을 함으로써 예술품이라는 자격을 부여했다. 정확히 100년 전의 일이다.

당시 이 작품을 걸 것인가, 바닥에 놓을 것인가, 이런 작품을 전시해도 될 것인가에 대해 논의했지만 변기는 결국 전시 기간 내내 칸막이 뒤에 폐기되는 운명에 처했다. 전시가 끝나자 뒤샹은 자신이 친구들과 함께 만든 잡지 ‘눈먼 사람’을 통해 기다렸다는 듯 반격에 나섰다. 그의 반격은 다음과 같았다. “참가비를 낸 모든 화가는 작품을 전시할 권리를 갖는다. 리처드 머트의 작품 ‘샘’을 거부한 것은 어떤 근거에 의한 것인가. 혹자는 그것이 부도덕하고 상스럽다고 말한다. 그러나 머트의 ‘샘’은 부도덕하지 않다. 머트씨가 그것을 직접 자기 손으로 제작했는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그것을 선택했다. 그는 평범한 생활용품을 사용하여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관점으로 그것이 갖고 있던 실용적 의미가 사라지도록 했다. 그리고 그는 이 소재의 새로운 개념을 창출해냈다.”

20세기의 수많은 미술가 가운데 생전과 사후가 뒤샹만큼 극적으로 대비되는 작가도 드물다. 그는 만년에는 미술을 떠나 체스에 몰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샹은 피카소와 더불어 20세기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한 명으로 꼽힌다. 무엇보다 뒤샹의 ‘샘’은 그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만큼 현대미술의 중요한 이정표로 인식되고 있다. 그는 어떤 물건이 예술가의 손을 거치면 작품이 되는 우상숭배적인 태도로 우상파괴를 시도했다.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더 이상 풍경이나 인물을 손으로 재현하는 솜씨가 아니라, 예술가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손으로 그리거나 직접 만드는 예술에 대한 냉소와 비판, 그 이면에는 대량생산 시대의 정서가 반영되어 있다.

무엇보다 가장 기본적인 의문은 ‘과연 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게 했다는 점이다.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것과 예술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것은 무엇일까. 실험적인 미술품 앞에서 누구나 한번쯤 대면하는 물음이다. 뒤샹의 ‘샘’은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핫한 질문을 던진다. 그렇게 뒤샹의 샘은 미술 속에서 마르지 않는 샘이 되었다. 현대미술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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