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호부호형

  • 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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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8   |  발행일 2017-03-28 제31면   |  수정 2017-03-28

한동안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선거판에서 가장 인기있는 상품이었다. 특히 대구·경북의 할머니들에게 박근혜는 고맙고 가여운 존재였다. 대구·경북지역 선거 출마자들은 이런 정서를 이용해 표를 얻으려 온갖 꾀를 짜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박근혜와는 일면식도 없을 것 같은 후보자들조차 호위무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어느 틈에 찍었는지(?) 박근혜와 악수하는 사진을 홍보용 현수막과 어깨띠에 넣었다. 호위무사들은 할머니 유권자들에게 속삭였다. “박근혜가 불쌍합니다. 박근혜를 지킬 수 있도록 저를 찍어주세요.”

상주-군위-의성-청송 국회의원 재선거가 15일 앞으로 다가왔다. 20대 총선 1년 만에 전국에서 유일하게 치러지는 재선거다. 각 당이 총력을 기울이고 전국의 관심이 집중될 선거다. 그러나 조기대선에 묻혀 뜨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를 선거에 이용하는 행태는 지난 20대 총선에서 극에 달했다. 친박·진박·원박 등 각종 파생어가 탄생했다. 이번 재선거에 출마한 김재원 자유한국당 후보는 당시 새누리당 경선을 앞두고 박근혜 오른팔임을 강조했다. 유권자들에게 보낸 문자의 마무리는 거의 ‘박근혜 오른팔’이었다. 그는 박근혜를 이용하기 위해 잔꾀를 낸 호위무사가 아니었다. 박근혜 오른팔임을 자타가 인정했다. 그런데 이번 재선에서는 유권자들에게 보내는 문자에 ‘박근혜 오른팔’이 등장하지 않는다. 스스로 오른팔을 오른팔이라 칭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청리공단에 타이타늄공장 유치’를 어필하고 있다.

사정은 더불어민주당 김영태 후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당 불모지에서 김영태는 오랫동안 외로운 싸움을 해왔다. 이번 재선거는 그에게 다시없는 기회다. 재선거 후 한 달도 안돼 치러지는 대통령선거에서도 민주당이 대세다. 현재 가장 당선 가능성이 높은 문재인 후보를 지역구로 불러들이고 싶다. 그의 입을 통해 “‘경북대 본부 상주캠퍼스 이전’이 나의 대통령 선거 공약에 들어있다”는 말을 유권자들이 직접 듣게 하고 싶다. 자신이 발표한 공약의 실현 가능성을 확인시키고 싶다. 그러나 지역의 강한 반(反) 문재인 정서가 그의 이런 욕구에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

홍길동전에서 아버지 홍판서는 집을 떠나려는 길동을 붙잡으며 호부호형(呼父呼兄)을 허락했다. 오는 30일부터 재선거의 본격적인 선거기간이다. 후보자들이 하고 싶은 말을 맘 놓고 할 수 있는 날은 언제쯤일까?

이하수 중부지역본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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