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유아 보호구역이 없다

  • 조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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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8 08:27  |  수정 2017-03-28 08:27  |  발행일 2017-03-28 제30면
[취재수첩] 유아 보호구역이 없다
조규덕기자<경북부/구미>

지난해 4월 구미에서 태권도학원에 가기 위해 길을 건너던 A군(당시 8세)이 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가 난 지점은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 학교 주 출입문 반경 300m 내에 설정하는 스쿨존(어린이보호구역)이었지만 교통안전시설은 전혀 없었다. 해당 스쿨존에는 과거 보행자 무단횡단을 막기 위한 중앙분리대가 설치돼 있었지만 주변 상인의 반발로 철거됐다. 또 스쿨존 표지판·방호울타리 등 교통안전시설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상태로 방치됐고 결국 이 길을 건너던 초등 1학년 어린이가 차에 치여 희생됐다. 당시 기자의 아들은 사고를 당한 A군과 같은 초등 1학년생이었다. 때문에 현장에서 취재를 하거나 기사를 쓰면서 마음 아파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스쿨존 사망사고 후 약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오빠와 두 살 터울인 기자의 딸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유치원을 다니고 있다. 가끔 친구와 싸웠다고 투정을 부리며 유치원을 가기 싫어할 때도 있지만 딸은 유치원에서의 생일 파티와 소풍 가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문득 작년 스쿨존 사고의 기억과 함께 “어린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주변은 얼마나 안전할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곧장 취재에 들어갔다.

구미시는 지난해 스쿨존 사망사고 후 예산 5억원을 편성해 스쿨존을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구미시 도로과 관계자는 “경찰과 교육청의 의견을 수렴해 안전시설 미설치 스쿨존과 시설이 미비한 스쿨존을 정비해 아이들이 안전하고 학부모들이 안심할 수 있는 통학공간을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구미시는 초등학교와 공립유치원 주변 스쿨존을 정비하고 교통안전시설도 확충했다. 그러나 정작 사립유치원 주변 스쿨존 지정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구미시와 구미교육지원청에 따르면 현재 구미지역 공립유치원 주변은 100% 스쿨존으로 지정돼 있지만 사립의 경우 64곳 중 34곳(53%)만 스쿨존이 지정돼 있다. 영·유아가 다니는 어린이집의 경우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구미지역 어린이집 500여 곳 가운데 50여 곳만 스쿨존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이다.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이 사실상 교통안전 ‘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 안전을 우려한 사립유치원 측은 스쿨존 지정을 우선적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구미시는 예산 문제 등을 이유로 지정을 미루고 있다. 게다가 100명 미만의 유치원 또는 어린이집의 경우 스쿨존 지정이 의무가 아닌 선택이라는 관련법을 근거로 지정을 미루고 있다. 실제 구미 A유치원의 경우 2009년 주 통학로에 대해 스쿨존 신청을 했으나 구미시는 8년째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 사립유치원 원장은 “초등학생보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의 대처능력이 더 떨어지기 마련”이라며 “몇 년째 행정기관에 스쿨존 설치를 요청했지만 아직까지 답이 없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구미시는 ‘국제안전도시’를 목표로 시민안전 최우선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아이들을 위험에서 지키겠다는 의지는 있는 것일까? 안전, 안전, 말만 백번 외쳐도 아무 소용 없다. 아이들이 안심하고 자랄 수 있는 환경은 어른들이 만들어야 한다. 조규덕기자<경북부/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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