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촛불 민심은 시민참여 확대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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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7   |  발행일 2017-03-27 제30면   |  수정 2017-03-27
중립기관 정치적 중립성
자율·공공성 확보하려면
국민판정단 제도 등 도입
시민 참여를 더 확대하고
시민의회로 발전시켜야
[아침을 열며] 촛불 민심은 시민참여 확대를 원한다
김윤상 (경북대 석좌교수)

헌법재판소에서 인정한 박근혜 탄핵 사유는 ‘최순실 국정 개입 허용과 권한 남용’이다. 국정 시스템이 붕괴된 것이다. 핵심 관계자들은 그런 사실을 몰랐다고 발뺌하지만 이미 3년 전인 2014년 11월에 비선 실세의 국정개입 의혹을 세계일보에서 보도한 바 있다. 당시 박관천 청와대 행정관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권력 서열 1위가 최순실씨라고 진술했으며, 이것도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런데도 청와대 내부는 물론 검찰을 비롯한 외부에서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각 기관에 깊이 뿌리를 내린 청와대 눈치 보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검찰의 편제, 예산, 인사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검찰 구성원 개인은 세 분야 중 인사권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한다. 편제와 예산은 조직 전체로서는 중요하지만 조직 구성원의 개인적 이해관계와는 대체로 무관하기 때문이다. 검찰총장은 법무부장관의 제청을 받아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며 국회의 인사청문회도 거치도록 되어 있으나, 대통령의 의중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바로 이 사실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위협한다. 박근혜정부 초기 채동욱 검찰총장이 국정원 댓글 사건을 엄정하게 수사하려고 하자 업무와 무관한 이유로 축출되기도 했다.

불법 댓글 외에도 ‘뜻을 같이하는 단체’를 지원해온 국정원이나, 정부 비판 시위에 과잉 대응해온 경찰청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대통령 또는 정치권이 인사에 관여하는 중립기관의 예는 그밖에도 많다. 대법원, 헌법재판소, 중앙선관위, 국가인권위, 감사원, 방송통신위와 같은 정부기관도 있고 한국은행, 한국방송공사와 같은 비정부기관도 있다. 정부 산하 공공기관에 대한 낙하산 인사가 비일비재하며 포스코 같은 민간기업의 인사에도 권력이 관여하였다. 경북대 사태에서도 보듯이 국립대 총장 인사까지 대통령과 권력에 의해 파행을 겪는다.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진이나 장관 등 자신의 참모에 대해서는 ‘코드 인사’를 해도 된다. 아니, 공약을 효과적으로 이행하려면 코드 인사를 해야 한다. 그러나 중립기관 인사는 그래서는 안 된다. 필자는 지난달 27일자 본란에서,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수를 연동시키는 진짜 비례대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비례대표제 하에는 거대 정당이 국회의석을 독과점하기 어렵기 때문에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견제 기능이 살아난다. 이렇게만 해도 상당한 진전이지만, 직업정치인은 자신의 재선과 당리당략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문제가 있다.

정치적 중립성, 자율성, 공공성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방안이 필요하다. 하나의 대안으로, 공무담임권을 가진 희망자 중 무작위 추첨으로 선발하는 가칭 ‘국민판정단’에 인사를 맡기는 것은 어떨까? 당해 기관에서 기관장 후보를 추천하고 국민판정단이 검증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국민판정단은 캐나다의 일부 주, 네덜란드, 아일랜드 등에서 채택한 ‘시민의회’의 전초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일랜드는 전국에서 무작위로 뽑은 시민 99명과 정부에서 의장으로 임명한 대법관 1명으로 구성된 시민의회를 통해 개헌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몇 달간 타오른 촛불 집회를 통해 대의민주주의의 심각한 결함이 드러났고 시민참여 확대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로 등장하였다. 국민판정단은 그 첫 단계다. 경험이 축적되면 시민의회로 발전시켜 나간다. 최소한, 국민의 상식을 반영해야 하는 중요 안건, 정당 간 의견이 심히 엇갈리는 안건, 국회 또는 국회의원의 이해관계가 걸린 안건은 시민의회가 담당하는 것이 옳다. 나아가서는 선거의원과 추첨의원이 함께 의회를 구성하거나 선거의회와 추첨의회의 양원제로 발전시킬 수도 있다. 아울러 온·오프라인을 통한 직접민주주의도 확대해야 한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헌법 제1조에 따라 풀뿌리가 곧 정책 결정자가 되는 시대가 열리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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