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 '현장토크'] 환경미화원 된 대졸자 2인

  • 이현덕 백승운
  • |
  • 입력 2017-03-25   |  발행일 2017-03-25 제8면   |  수정 2017-03-25
“환경미화원으로 연봉·여유 두 토끼 잡았죠”
20170325
지난 22일 대구시 수성구 청호로에서 수성구청 환경미화원 박정애(왼쪽)·정현주씨가 청소를 하다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대표적 ‘기피 직업’이던 환경미화원이 상한가다. 공채 경쟁률이 평균 20대 1을 넘는다. 대졸 응시자가 50%를 넘고 명문대 출신 지원자도 늘고 있다. ‘환경미화원 고시(考試)’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고학력자들이 환경미화원이 되는 것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대학까지 나왔는데 왜?’라는 물음표를 던지기 일쑤다. 지난 22일 대구 수성구청 환경미화원 정현주씨(32)와 박정애씨(여·44)를 만났다. 두 명 모두 대졸이다. 정씨는 경운대 경호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환경미화원 4년차다. 박씨는 영진전문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방송통신대 유아교육과를 졸업했다. 재수 끝에 올해 합격해 지난 20일 현장에 배치됐다. 인터뷰한 이날이 3일차 되는 말그대로 ‘신참 중의 신참’이다.

정현주씨
경호학과 卒 대학 교직원 출신
前직장 출장 잦고 생활 불규칙
지인 추천으로 미화원 선택

박정애씨
컴퓨터공학 전공 21년 군생활
행정직도 합격했지만 후회안해
가족과 나누는 시간 많아 만족


▶대졸이다. 환경미화원이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 것 같다.

정현주= “대학 졸업 후 모교인 경운대 교직원으로 일했다. 국제업무를 맡으면서 해외출장이 잦아 가정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지인이 환경미화원을 추천했다. 연봉도 괜찮고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에 끌렸다. 무엇보다 가정에 충실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미화원 1호봉 평균 연봉은 3천600만원이라고 한다. 근무는 구역별로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오전 6시에 출근해 오후 5시에 퇴근한다.)

박정애= “환경미화원이 되기 전에 21년간 군생활을 했다. 아들 뒷바라지를 위해 제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계급이 상사였다. 제대 후 사무직 공무원 시험을 여러번 봤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눈높이를 낮추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환경미화원이다.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져 이 일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언론은 환경미화원 시험에 대졸자들이 몰리는 이유로 경기불황과 실업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한편으로는 일리 있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날 만난 환경미화원들의 이야기는 달랐다. 취업난도 다소 연관이 있지만, 실제 환경미화원이 되려는 대졸자들은 규칙적인 생활과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경쟁률이 올라가는 가장 큰 이유는 취업 문제보다는 달라진 직업선택 기준이 크게 작용한 듯 했다.)

▶주위에서 반대가 심했을 것 같다.

정= “대학을 나와 안정된 직장에 다니던 사람이 갑자기 환경미화원이 되겠다고 하니 당연히 이해를 하지 못했다. 면접관도 우려스러웠는지 ‘더럽고 지저분한 일인데 할 수 있겠느냐’고 묻더라. 이렇게 반문했다. ‘처자식한테 소홀하고 가족을 책임지지 못하면 그보다 더 힘들고 더러운 것이 있겠느냐’고….”

박= “환경미화원에 합격했을 당시 대구시청 행정직 시험에도 동시에 붙었다. 고민 끝에 환경미화원을 선택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21년간 군에서 행정 업무를 보면서 정신적 스트레스가 많았다. 지금 하는 일은 그런 고통이 덜해 적성에 맞는 것 같다.”

▶힘들지는 않나.

박= “크게 힘든 것은 없다. 잠시 쉴 때 뒤를 한번 돌아본다. 깔끔하게 청소된 길이 눈에 들어오는데 그 순간 내 마음도 개운해진다.”

정= “아직도 종량제 봉투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검은 봉지에 음식물을 담아 내놓는 분들도 계신다. 쓰레기 분리만 잘해도 환경보호는 물론 자원과 예산을 많이 절약할 수 있다.”

이날 만난 대졸 환경미화원들 역시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는 듯했다. 하지만 ‘대학까지 나와서 왜?’라는 질문에 무척 당당했다. 이유도 분명했고 명분도 명확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직업을 귀하게 여겼다. 그것은 일에 대한 자부심으로 읽히기도 했다.

백승운기자 swback@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경제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