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호 기자의 푸드 블로그] 블루오션 개척자들-나홀로족 겨냥 대구식 일식당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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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03   |  발행일 2017-02-03 제41면   |  수정 2017-02-03
담백한 日 가정식에 화끈한 대구의 맛 ‘톡톡’…혼밥족 고독 달래는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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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식 음식문화에 일본 이자카야 스타일의 음식라인을 매칭해 1년새 일본 가정식 핫플레이스로 급부상한 ‘키햐아’내부 전경. 나홀로족이 이용하기 좋게 테이블도 스몰사이즈로 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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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본토보다 더 깊은 육수 맛을 내는 나가사키짬뽕.

제일 만만한 게 식당인 세상. 그러면서도 가장 잘 망하는 게 식당인 세상이다. 무슨 아이템을 띄우면 돈 벌까, 다들 고심한다. 각종 푸드매거진은 앞다퉈 2017년 푸드트렌드를 밀도 있게 전망한다. 기자한테도 정유년 식당가 운세를 묻는 전화가 자주 걸려 온다. 이번 주엔 지역 외식업주가 명심해두면 도움이 될 만한 푸드 트렌드 정보를 정리해본다. 물론 ‘정답’은 아니겠지만.

◆ 나의 욕망을 소비한다

‘나의 욕망을 소비한다.’

최근 2~3년 새 소비자의 기본 성향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예전엔 아무래도 남의 욕망이 나의 욕망을 압도했다. 친구가 장에 가니 나도 장에 갔다. 이제는 아니다. 무슨 장에 갈 건지, 그 장에 가서 무엇을 소비할 건지 사전에 꼼꼼하게 비교분석한 뒤 결행한다. 스마트폰이 있어 온갖 정보를 실시간으로 검색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결행은 예전보다 더 효율적이고 수월할 수밖에 없다.


‘1인세대 520만시대’ 넷 중 1가구 싱글
쿡방 열풍 이어 가정간편식 상품 주목

작년 문 연 대명9동 카페골목 키햐아
중학교 동기 김도관·송시현 의기투합
홀로족 공간 구성·日 가정식으로 대박
대구 18곳 등 전국 23개 가맹점 확보



이런 흐름에 불을 지핀 건 바로 ‘나홀로족’. 이들이 2010년을 기점으로 대표적 소비층으로 등장한 때문이다. 나홀로족은 타인의 욕망보다 자신의 욕망에 더 민감하다. 가족이 소비 단위로 움직이던 지난 시절엔 부모의 욕망이 아이의 욕망을 앞섰다. 하지만 이젠 세상이 달라졌다. 남편의 식욕보다 아내의 식욕이 더 중시된다. ‘여존남비세상’인 덕이다. 하지만 아내의 식욕도 결국 아이의 식욕에 밀린다. 이런 제약조건이 결국 대한민국 외식업체 지형도를 새로운 스타일로 바꿔놓을 수밖에 없다.

◆ 혼밥·혼술족 권하는 사회

혼자가 더 편한 세상이다. 1인과 이코노미의 합성어로 ‘일인가구시대의 경제’를 의미하는 ‘일코노미’란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예전엔 ‘나홀로족’은 소수자였다. 이젠 ‘소비 리더’로 당당하게 존중받는다. 그러다 보니 혼밥(혼자 밥을 먹음)·혼술(혼자 술을 마심)에 이어 혼영(영화 관람)·혼공(공연 관람)·혼행(여행)·혼쇼(쇼핑)족이 새로운 외식 소비층으로 등극했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최근 성인 남녀 1천884명에게 ‘나홀로족 트렌드’에 대해 조사를 해봤다. 실제 전체 응답자의 대부분인 96.4%는 ‘혼자 무언가 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실제 성인 남녀 10명 중 2명은 스스로를 ‘나홀로족’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절반 이상인 68.9%는 ‘매번은 아니지만 혼밥·혼술·혼행 등은 좋아하는 취미’라고 응답했다. 그중에는 ‘혼밥을 해 봤다’는 응답자가 94.0%로 가장 많았고 혼영(73.4%)과 혼술(72.6%)을 해 봤다는 응답자가 다음으로 많았다. 이어 혼행을 해 봤다는 응답자도 61.8%로 과반수였고 혼공을 해봤다는 응답자도 38.2%에 달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지난해 12월 말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 4분의 1가량(22.3%)이 1~2인 가구, 4가구 중 1곳이 싱글족인 셈이다. 2030년에는 1~2인 가구가 전체 인구의 32%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갈수록 가족문화는 위축되고 독신문화는 활성화되고 있다. 청년들의 결혼 적령기가 평균 30세로 많이 늦춰졌다. 결혼 전까지 직장생활을 하면서 거의 혼자 식사를 하게 된다. 이혼하는 사람들의 수도 폭증하고 있다. 독거노인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결국 1인세대 520만명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 HMR 신드롬

대형식품회사들은 다들 ‘HMR(Home Meal Replacement·가정간편식)’를 미래 신성장동력사업으로 꼽는다. NH투자증권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HMR를 블루오션으로 지목했다.

2010년 간편식시장은 업계 추산 7천700억원이었으나 지난해는 1조3천억원대로 껑충 뛰었다. 올해도 2조원을 충분히 넘어설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왜 HMR가 급부상하는 걸까?

우리의 현실이 그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맞벌이 세상. 집에서 요리를 해 먹을 시간도 여유도 없다. 다들 외식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장을 봐서 요리를 하는 것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시켜 먹거나 비슷한 HMR를 먹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다. 특히 맞벌이 직장 여성은 요리에 집중할 여유가 없어 갈수록 HMR에 의존하고 있다. HMR는 예전 인스턴트·패스트푸드의 간편함에 집밥의 영양을 결합해 놓은 것이다. 이건 백종원이 진행한 쿡방, ‘집밥 백선생’의 영향이 지대했다.

HMR는 1인용 도시락과 웰빙 컵밥 특수를 몰고 왔다.

2010년 여름에는 ‘삼각김밥’이 편의점의 존재이유랄 정도로 선풍을 일으켰다. 홀로족을 위한 CJ제일제당의 ‘햇반’도 1997년 등장해 국내 인스턴트 밥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사람들은 그래도 밥은 집밥이라고 고집했다. 만만치 않은 고슬고슬한 맛 때문에 햇반은 20년 롱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외식과 내식을 절충한 HMR. 이건 가격·속도·영양 등 세 가지 요소를 다 만족시켜주고 있다. 이로 인해 국민간식이었던 라면까지 HMR에 밀리고 있음을 농심 측이 시인할 정도다.

실제로 밥으로 만든 가정 간편식 시장은 매년 커지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2014년 양곡소비량 조사 결과를 보면 쌀을 활용한 식사용 조리식품의 소비량은 2012년 7만4천495t에서 2014년 9만8천369t으로 약 32% 증가했다. 대형마트와 온라인몰에서도 컵밥과 볶음밥 등의 매출이 증가세다. 지난해 롯데마트의 컵밥류 매출은 전년보다 36.8% 신장했다. 특히 국밥류(99.4%)와 비빔밥(50.0%)의 매출 신장폭이 컸다.

가정간편식 시장에서 가장 핫한 분야가 ‘즉석밥’이다. ‘진화된 햇반’으로 보면 된다. 현재 즉석밥시장에 뛰어든 기업은 CJ제일제당과 대상(청정원), 풀무원, 비락 등이다. 햇반으로 즉석밥시장을 주도하는 CJ제일제당은 2013년부터 볶음밥류 위주로 가정간편식을 판매하고 있다. 이 중 ‘프레시안 볶음밥’은 월 매출 5억원 이상을 기록했다.

2012년 업계 최초로 컵밥 제품을 출시했던 비락도 지난해 ‘비락 컵밥’ 3종을 리뉴얼해 새롭게 선보였다. 청정원은 나물밥으로 고객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청정원은 지난해 녹차 곤드레나물밥, 둥굴레 취나물밥, 메밀 무청나물밥 등을 내놨다. 지난해 말 선보인 냉동볶음밥 3종에 이은 후속제품이다. 나물밥은 집에서 다듬기 힘든 생나물을 듬뿍 넣어 지은 밥이다. 나물과 잘 어우러지는 녹차·둥굴레·메밀 우린 물로 밥을 지어 맛은 물론 건강까지 잡았다는 평가다.

◆ 키햐아

현재 대구에서 HMR 현상과 맞물려 대박을 치고 있는 핫 플레이스는 남구 대명9동 카페골목에 있는 ‘키햐아’다.

지난해 등장해서 대구 18개 업소 등 전국에 23개의 가맹점을 확보해 일본 가정식의 선두주자가 된 키햐아. 1~2명에게 딱 맞는 공간이다. 바텐석에 앉는 홀로족이 적잖다. 여기에 앉으면 요즘 일본 중년 남성한테 인기 짱인 만화와 드라마인 ‘고독한 미식가’가 된 기분이다. 여느 식당과 달리 단체식이 어울리지 않고 나홀로 식탁 같은 분위기다. 주메뉴는 연어샐러드·돈부리(덮밥)·라멘·우동류. 일단 상호가 개그맨 전유성이 청도에 처음 와서 차린 짬뽕집 ‘니가 쏘다쩨’처럼 독특하고 재밌다. 키햐아는 ‘탄산이 식도를 넘어갈 때 간질거림을 긁어주는 소리’를 의미한다.

현재 송시현·김도관씨가 동업으로 식당을 꾸려가는데 둘 다 ‘청년장사꾼 유전자’가 다분하다. 둘은 대구 평리중학교 동기. 푸드트럭을 타고 버스킹하듯 거리에서 음식을 팔아도 성공할 열정을 갖고 있다. 송씨는 호주 워킹홀리데이 때 한 일식당에서 감각을 익혔다. 처음에는 주류를 앞세운 퍼브(pub) 레스토랑을 열었는데 승산이 없었다. 실내인테리어 전문가인 동기 김씨의 도움을 받아 요즘 대세인 대구식 일본 간편식을 내자고 맘을 먹는다. 지역의 경우 2년 전 시내 동성로에 상륙한 ‘토끼정’, 방천시장 내 ‘또바기키친바’ 등이 일본 가정식을 주도하고 있었다. 이들은 식재료의 식감보다 국물 맛에 더 승부수를 띄웠다. 고독한 자에겐 자극적이고 깊은 페이소스의 육수가 더 친근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렇게 해서 대구식 일식 HMR가 론칭된다. 본토의 담백한 감미로움에 대구 육개장 특유의 얼큰하고 화끈한 맛을 섞었다. 남구 이천동의 유명 짬뽕집인 ‘진흥반점’의 걸쭉하고 육중한, 짬뽕육수 같은 맛을 키햐아는 자랑스럽게 성공시켰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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