深深하고 高古한…신라의 맛을 찾다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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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25   |  발행일 2016-11-25 제33면   |  수정 2016-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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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산책하면 경주의 속살을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다. 황남동 한옥촌에 있는 ‘한옥마을 셔블’은 대릉원을 지척에 놓고 감상할 수 있는데 마당에는 맘대로 탈 수 있는 자전거가 항상 대기중이다.

석굴암, 불국사, 첨성대, 포석정, 천마총, 안압지…. 한때 우린 ‘묻지마 수학여행지 1번지’였던 경주의 메이저급 관광지에만 매몰됐다. 태극기처럼 감격적이지만 왠지 실감은 덜 났다. 원래 위세찬란한 게 소시민과 눈높이로 포개지기란 어려운 법. 몰려다니는 관광객은 유명한 몇 군데만 인증샷처럼 찍고 무심히 떠나버린다.

2000년대로 들어서면서 경주의 이면을 다양한 각도로 보려는 이들이 등장한다. 유적지 경주에서 조금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랄까. 홍상수와 장률 감독이 경주 알리기에 일조했다. 둘의 영화 ‘생활의 발견’과 ‘경주’는 유적지에서 벗어난, 일상의 시선으로 본 경주의 모습을 잘 음미해줬다.

최근에는 지진 때문에 상심이 컸다. 하지만 경주 사람들은 이 정도밖에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걸 오히려 다행스럽게 여긴다. 이제 안전하니 ‘경주로 퍼뜩 놀러오라’고 간청한다. 그 다행스러움을 풍요로움으로 솎아주고 싶어서 가을과 겨울 사이에 걸린 경주를 찾아봤다. 거기서 요란한 유적보다는 경주스러운 음식문화의 행간을 읽고 싶었다.

◆ 고분과 고분…그리고 한옥

참 고분이 많다. 대릉원 등 경주 전역에 모두 155기가 산재한다. 신라 때 모두 56명의 왕이 명멸했는데 이 중 왕릉으로 추정되는 게 36기. 박인관 경주학연구원장에게 물어보니 확실한 왕릉은 선덕여왕, 무열왕, 원성왕, 문무왕, 흥덕왕 등 7기 정도란다.

곳곳이 한옥촌이다. 덩달아 외지에서 온 한옥 마니아들도 빛을 발한다. 배반동 효공왕릉 옆 한옥스테이 ‘수오재(守吾齋)’를 지키는 이재호씨. 삼국유사 연구가 겸 여행작가인 그는 해체복원한 4채의 고가를 돌보며 22년째 ‘북소리’로 산다. 황남동 한옥촌에 있는 한옥펜션 ‘행복마을 셔블’은 위치 때문에 자유여행가에게 꽤 많이 알려져 있다. 능 바로 옆에 지어진 국내 최초의 2층 한옥이다. 여기로 가면 보름달처럼 다가서는 대릉원의 능을 이부자리에 누워서도 품을 수 있다. 뒷동산 같은 고분은 처마선과 어우러져 멋진 피사체가 된다.

국제적 사진가 배병우 덕분에 경주 남산 삼릉과 안강읍 육통리 흥덕왕릉 소나무가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다. 20여년 전 동양화가 소산 박대성은 경주와 진검승부를 벌이기 위해 남산 자락에 작업실을 마련한다. 그 이전에도 ‘마지막 신라인’ 고청 윤경렬이 1950년대 경주로 내려와 ‘경주어린이박물관학교’를 열며 경주역사문화지킴이로 나선다. 지금은 홍대 미대를 나온 그의 아들 윤광주가 부친의 집에서 고청유물복원연구소를 이끈다. 김윤근 경주문화원장, 진병길 신라문화원장 등도 신라문화의 전승과 현대화에 동분서주한다. 신라음악 연구가 김승혜 박사와 함께 경주의 대표적 여성 역사지킴이인 김수민 박사는 신라음식 복원에 큰 포부를 갖고 있다. 94년에는 소설가 강석경도 경주로 이사왔다.

70년대 발진한 보문호, 그리고 감포 문무대왕릉을 보러 갈 때 만나게 되는 덕동호. 그 끝자락 왼쪽 길가에 있는 구멍가게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들어가면 관광객에겐 거의 알려지지 않은 무릉도원이 있다. 경주 사람들에게는 ‘절골’로 알려진 ‘황용골’이다. 한겨울 그 계곡에서 한나절을 보내보라. 세월 흘러가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 골짜기의 정정함은 경주민속공예촌에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93호 전통(箭筒·화살통) 장인 금학 김동학이 만든 전통과 2007년 문화관광부로부터 전국 첫 판소리 명가로 선정된 경주의 소리꾼 정순임의 신명에 연결된다. 또한 손원조 서라벌신문사장이 소장한 1천300여개의 진귀한 벼루 바닥에도 가닿는다.

신라 음식의 명맥은 지금까지 이어질까. 경주에 그런 흐름을 반영한 음식이 있을까. 늘 그게 궁금했다. 몇몇 심지 굳은 요리연구가들이 서라벌스러운 음식개발에 헌신하고 있지만, 대다수 그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고만고만한 순두부 전문 식당 등에 휘둘리다가 돌아간다. 젊은층은 교동법주의 명가 최부잣집에 와도 백종원 때문에 유명해진 ‘교리김밥’ 정도에 만족하고 떠난다. 일단 소란스러운 식탁을 멀리하고 정화수처럼 단아하게 앉아 있는 최부자 종부의 손맛이 스며들어간 경상도 반가음식 전문 교동 ‘요석궁’부터 살펴봤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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